정부 R&D 과제 성공 여부 논문 등 양적 지표로만 평가
시장 모르는 관료가 예산 배분…"과제 선정때 기업 참여시켜야"
[ 김태훈 기자 ] #1. 정부 출연연구원의 A연구원은 최근 3차원(D) 프린터 소재 분야 연구 과제를 따냈다. 일명 뜨는 과제를 맡아 기분이 좋을 법하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그동안 탄소나노튜브 연구로 상당한 성과를 냈고 사업화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해 최근 유행하는 분야로 연구 주제를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2. 서울 한 대학의 조교수인 B씨. 그가 연구하는 분야는 이차전지 소재다. 박사후과정 때 썼던 논문을 개량한 연구여서 시작단계인데도 어떤 결과물을 낼지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연구에 실패하면 다른 정부 과제를 따기 어렵다 보니 성공할 수 있는 주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현장의 모습이다. 사업화 성과가 날 만한 연구에 예산이 흘러가지 못하고 의미 있는 도전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게 문제다. 당연히 결과물도 신통치 않다.
○미국 절반도 안되는 생산성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25개 출연연구원이 작년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받은 수입은 843억원이다. 같은 기간 투입된 연구비는 2조1465억원. 투입 대비 성과를 보여주는 연구생산성은 3.9%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뒷걸음질쳤다. 2012년에는 908억원을 벌어 4.5%의 생산성을 보였다.
2012년 기준 대학 등을 포함한 한국 전체 공공연구기관의 연구생산성은 1.49%로 더 낮아진다. 3.9%인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경상기술료 격차는 더 크다. 경상기술료는 기술이전 후 사업화됐을 때 매출액 기준으로 받는 돈이다. 한국의 경상기술료는 미국 10분의 1에 불과하다.
○기술무역적자 OECD 최대
한 출연연 중소기업지원팀 소속의 C연구원. 한 달에도 몇 차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기술이전 설명회에 참가하고 있지만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해 고민이다. 그는 “사업화 단계를 100%라고 볼 때 연구원의 특허와 기술 상당수는 솔직히 50~60%까지만 개발된 상태”라며 “가져가도 상당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떠안으려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창조경제를 강조하면서 정부가 R&D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게 기술사업화다. 연구성과를 기술이전, 창업 등을 통해 사업으로 연결하라는 주문이다. 25개 출연연 공동으로 중소기업지원통합센터(1379콜센터)를 설립하고 출연연마다 중기 지원, 기술사업화 전담조직도 신설했다. 하지만 소규모 계약만 이뤄질 뿐 굵직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25개 출연연이 2013년 기준 전체 보유한 특허는 무려 3만4888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활용된 특허는 1만1706건. 활용률이 33.5%에 불과하다. 5년이 지나 무용지물이 된 휴면 특허도 2011년 4533건에서 작년 5622건으로 24% 증가했다. R&D 과제의 성패 여부를 논문, 특허 등 양적 지표로만 평가하면서 초래된 결과다.
2012년 한국은 기술무역수지에서 57억40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적자 규모다. 산업에 필요한 핵심, 원천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기업들이 해외에서 기술을 수입해오기 때문이다.
○정권 따라 연구주제 바뀌어
정부가 바뀔 때마다 R&D 주요 테마가 바뀌는 것도 문제다. 지난 정부 때는 ‘녹색’, 이번 정부에서는 ‘창조경제’ 등이 주요 지원 대상이다. 3D프린터, 그래핀, 나노, 유전체분석, 빅데이터 등 뜨는 연구주제에는 20여개 부처가 모두 경쟁적으로 예산을 지원한다. 한 출연연의 책임연구원은 “유행에 따라 연구 지원 대상이 자주 바뀌다 보니 연구 현장에선 10년 이상 한우물을 판 고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은 “시장을 잘 모르는 공무원과 연구자들이 정부 R&D 사업의 기획과 집행을 주도하면서 기업에 쓸모없는 연구결과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정부 과제를 선정할 때 기업 참여를 늘리고 기업 수탁연구, 산·학 연구 실적 등을 연계하는 등 시스템 전반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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