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주 기자 ]
한가롭게 체스를 두는 노인,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 낙엽을 밟으며 산책하는 청년….
프랑스 파리 6구 뤽상부르 공원은 도심 속 시민들의 안식처다. 1610년 지어진 뤽상부르 궁전에 딸린 정원으로 아름다운 화단과 연못, 예술가들의 조각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2015 봄·여름(S/S) 패션쇼’가 최근 뤽상부르 공원의 작은 정원에서 진행됐다. ‘2015 S/S 파리패션위크’의 일환이었다. 에르메스 패션쇼장에선 요란하고 과시적인 옷차림의 ‘패션 피플’들은 찾기 어려웠다. 단아하게 차려 입은 관람객은 작은 자갈이 깔린 정원 안뜰에서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며 차분하게 대기했다.
에르메스는 이번에 똑같은 쇼를 같은 장소에서 시간만 달리해 두 번 열었다. 관람을 희망하는 바이어는 넘치는데 좌석이 넉넉지 않아서다. 이번 쇼는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아티스틱 디렉터)인 크리스토프 르메르가 에르메스에서의 마지막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여서 예년에 비해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무대 구성은 단출했다. 관람객의 시선이 미로를 연상케 할 정도로 복잡한 W자형 혹은 U자형 무대 때문에 분산되지 않도록 일직선 런웨이를 마련했다. 무대 바닥에는 입자가 고운 하얀 모래를 깔았다. 무대 정면에는 시폰으로 만든 연살구빛 천만 걸어뒀다. 무대 연출의 군살을 걷어내 관람객들이 오롯이 에르메스가 제시하는 내년 상반기 제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모델들은 연살구빛 천 사이로 사박사박 모래알을 밟으며 걸어나왔다. 아이보리 펄그레이 오커 오프화이트 캐슈넛 등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여성미를 돋보이게 하는 색상이 주를 이뤘다. 신체의 선을 따라 흐르는 에르메스 특유의 자연스러운 실루엣은 여전했다. 다양한 길이의 맥시 스커트, 와이드 팬츠도 눈길을 끌었다.
1년 전 ‘2014 S/S 파리패션위크’ 때 선보인 제품들보다 조금 더 여유롭고 가벼운 스타일이었다. 르메르는 당시 수풀이 우거진 무대 위에 그린 브라운 코발트블루 색상의 가죽 소재,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을 담아냈다. 라코스테를 이끌던 르메르는 마틴 마르지엘라, 장 폴 고티에의 뒤를 이어 2010년 에르메스에 영입됐다. 그는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 산하에 분야별 아티스틱 디렉터를 두는 에르메스에서 피에르 알렉시 뒤마(총괄), 베로니크 니샤니앙(남성복), 피에르 아르디(구두·보석) 등 3명의 아티스틱 디렉터와 함께 일했다. 르메르는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크리스토프 르메르’에 집중하려고 지난 7월 사의를 표명했다. 후임자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셀린느, 더 로우 등을 거친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다. 시뷸스키는 내년 3월 ‘2015 가을·겨울(F/W) 파리패션위크’에서 에르메스에서의 첫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파리=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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