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전문가 좌담] "FTA 허브로 부상한 한국…외국 투자자에 매력적인 시장될 것"

입력 2014-11-14 20:55   수정 2014-11-15 06:13

사회=김홍열 경제부 차장


[ 심성미 기자 ]
한국은 지난 10일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 유럽연합(EU)에 이어 중국을 품으면서 세계 3대 경제권과 모두 FTA를 맺는 국가가 됐다. 61%(세계 5위)였던 한국의 FTA 영토(FTA 상대국들의 국내총생산 총합)는 73%(3위)로 확대됐다. 다만 한·중 FTA는 미국 및 EU와의 FTA에 비해 시장개방률이 낮아 평가가 엇갈린다. 중국의 공산품시장 문을 크게 열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국내 농수산물시장을 잘 방어했다는 진단이 혼재한다.

한국경제신문은 14일 서울 중림동 본사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열고 한·중 FTA의 이해득실을 점검하고 기업 이익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좌담회에는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 겸 서울대 교수,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정인교 인하대 교수가 참석했다. 사회는 김홍열 경제부 차장이 맡았다.

▷사회=한·미, 한·EU FTA와 비교해 한·중 FTA가 갖는 각별한 의미를 짚어달라.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2006년 한국과 미국이 FTA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굉장한 관심을 보인 국가가 중국이었다. 이후 중국 지도부는 한·중 FTA를 절실히 요구해왔다. 한국이 세계 교역 규모 1위인 국가와 FTA를 맺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아시아지역으로 따지면 교역 1위(중국)와 3위(한국) 국가가 FTA를 체결한다. 특히 글로벌 무역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세계 1, 2, 3위 경제권인 EU, 미국, 중국과 FTA를 맺어 관세장벽을 없애거나 낮추는 것이다.

▷김도훈 산업연구원장=2003년께 ‘한국과 가장 좋은 FTA 파트너는 어디인가’를 주제로 연구한 적이 있다. 당시 1위가 중국, 꼴찌가 일본이었다. 한·중 FTA는 ‘지역경제 통합’ 관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한·일 FTA, 한·중·일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한국이 ‘지역경제 통합’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본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주요 교역국가와 양자 간 FTA를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 글로벌 FTA망을 형성했다. 이제는 기업들이 FTA망을 통해 수출 확대 등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2004~2005년 기업들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FTA 대상 국가’를 설문 조사했더니 중국이 압도적인 1등으로 꼽혔다. 다음이 미국, EU 순이었다.


▷사회=낮은 수준에서 타결됐다는 지적이 많은데.

▷박 전 교섭본부장=기대만큼 높은 수준은 아니다. 중국의 공산품시장과 투자·서비스·지식재산권 분야가 좀 더 개방됐어야 한다고 본다.

▷김 원장=시장개방률이 높은 한·미 FTA나 한·EU FTA 같은 효과를 단기적으로 얻기는 곤란할 것이다. 중국과는 품목 수 기준 91%, 수입액 기준 85% 수준이다. 그것도 굉장히 더딘 관세 철폐 일정이다. 중국과의 FTA 타결은 양국 간 무역환경을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 중국은 그동안 10개 국가와 매우 보수적인 시장개방 수준으로 양자 간 FTA를 맺었다. 한국과의 FTA도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사회=추가 협상해 보완할 가능성은 없나.

▷박 전 교섭본부장=대부분 FTA가 발효되고 나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튀어나온다. 그러나 한 국가가 불평한다고 해서 협상이 다시 이뤄지긴 쉽지 않다. 국가 간 협상엔 균형이 맞아야 한다. 내가 하나를 더 원한다면 상대방에게 하나 더 양보해야 추가협상이 된다는 얘기다. 통상 FTA 협정문엔 추가협상 조항이 있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긴 실질적으론 어렵다.

▷정 교수=쉽지는 않겠지만 통상정책 역량을 키워 협정 보완에 대해 내부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협정이 이행되더라도 업그레이드 채널을 상시화해 기업들의 관심사항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호주·뉴질랜드 FTA, 한·아세안 FTA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왔다.

▷박 전 교섭본부장=낮은 수준이라도 글로벌 다자무역체제가 작동하지 않을 땐 시간이 금이다. 경쟁국에 앞서 빨리 중국시장을 선점할수록 좋다. 국민들 사이에선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 규모가 큰 중국과의 FTA에 막연한 공포심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에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고(평균 관세율 8% 유지) 해서 중국 제품이 안 들어올까. 오히려 이웃나라 거대 시장의 성장세를 타고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 더 낫다. FTA는 정치적인 협정의 성격도 가진다. FTA가 타결되면 식품, 위생, 어업 등 각종 분야 위원회가 13~14개 생긴다. 위원회를 활용해 서로 만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양국 간 또 하나의 소통채널이 생기는 것이다.

▷사회=한·중 FTA로 국익을 극대화할 방안은.

▷김 원장=‘대기업도 두려워하는 중국과 FTA를 맺으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중소기업은 이미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거다. 물론 중국은 거대 강국이다. 공룡으로 치면 티라노사우루스다. 이 거대한 육식동물이 공격하지 못하는 공룡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작은 익룡 벨로시랍토르다. 작지만 날쌔게 움직이며 필요한 곳만 탁탁 공략한다. 한국도 벨로시랍토르처럼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가공무역에만 매달리지 말고 서비스·투자 분야 등에서 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야 할 것이다.

▷정 교수=최근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둔화됐다. 대(對)중국 수출 감소와 관련이 있다. 그동안 한국이 중국시장에서 누려왔던 지위를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지 중요한 화두가 됐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한·중 FTA가 타결됐다. 중국도 다른 나라처럼 서비스시장을 개방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중국이 홍콩 외 제3국에 서비스시장을 개방한다면 한·중 FTA는 아주 중요한 채널이 될 수 있다. 기업들이 한·중 FTA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에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박 전 교섭본부장=한국은 미국, EU에 이어 중국과 FTA를 맺어 ‘FTA 허브’로 부상했다. 한·중 FTA는 외국인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 예컨대 유럽 기업이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지을 수 있다. 한국은 중국보다 지식재산권 보호가 강하고, 정보기술(IT) 분야가 강하다.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도 덜한 편이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이 중국과 FTA를 맺은 한국에 지역거점을 구축하면 수송비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 많이 진출할수록 고급 일자리가 늘어나는 부가적인 혜택을 보게 된다.

▷사회=중소기업, 농수산업계의 반발도 있을 텐데.

▷김 원장=중국이 한국에 수출하는 농수산물 중 가장 두려운 것은 곡물이나 육류보다는 야채, 신선채소, 과일류다. 온갖 규제를 하고 있는데도 이미 국내엔 중국산 먹거리 천지다. 협상에서 농수산물 분야를 초민감품목으로 많이 빼놨기 때문에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농민들도 좀 더 적극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중국인 사이에선 한국 농수산품과 가공 식료품이 품질이 좋고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FTA로 농수산업계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박 전 교섭본부장=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한국의 시장개방 역사는 20년에 이른다. 정부는 개방할 때마다 수많은 농수산업 지원정책을 내놨다. 지원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쌓인 만큼 이제는 성숙한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한·칠레 FTA 체결 당시 국내 포도 과수원이 모두 고사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과연 그랬나. 단발적인 정책을 내놓는 시대는 지나갔다.

▷사회=한·중 FTA 타결을 계기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가 탄력을 받을 것 같다.

▷정 교수=TPP 타결 시점은 일러도 2016년 이후로 예상된다. 한국은 TPP 참여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그 기간 다른 국가들과 이미 맺어놓은 FTA의 선점효과를 누리는 게 유리하다고 본다. TPP가 타결되면 일본만 좋은 일 시키는 거다. FTA 체결 실적이 부진한 일본이 일거에 모든 것을 만회하고 글로벌 무역시장에서 한국과 같은 출발선에서 뛰게 된다.

▷김 원장=TPP 가입 국가 간 누적원산지 기준을 만든다면 개별 FTA보다 훨씬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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