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용 CCTV 설치 후
기본 비밀번호 바꾸지 않으면 누구나 들어와 영상 확인 가능
러시아에 서버 둔 인시캠 사이트, 서울 등 한국 350여곳 영상 중계
[ 박병종 기자 ]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가정집. 샤워를 하고 나온 여성이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한 뒤 이불을 정리하고 외출을 준비한다. 이 여성의 침실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다른 사람이 설치한 몰래 카메라가 아니다. 화면 속 주인공이 직접 설치한 가정용 CCTV 영상이다.
초기 비밀번호 설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영상이 외부로 유출된 것이다. 러시아에 서버를 둔 것으로 추정되는 인시캠(www.insecam.cc)이라는 사이트는 이런 영상을 아예 인터넷상에서 생중계하고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가정용 CCTV는 1만개를 넘는다. 국가별로는 미국(4717), 프랑스(2062), 네덜란드(1614), 일본(871) 순으로 많았다. 한국에서도 서울 경기 등 350여곳의 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느슨한 CCTV 보안의식
민감한 영상이 해당 웹사이트에 공개된 것은 가정용 CCTV를 설치하고, 기본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정용 CCTV로 사용되는 장치는 대부분 ‘IP(인터넷 프로토콜) 카메라’다. IP카메라는 카메라 모듈과 영상 압축 장치, 자체 연산장치(CPU), 네트워크칩을 내장하고 있어 컴퓨터 연결 없이도 인터넷을 통해 영상 확인이 가능하다. 문제는 일반 CCTV(폐쇄회로 TV)와 달리 인터넷에 연결돼 있어 보안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인시캠 사이트에 연결된 카메라의 제조사는 포스캠 링크시스 파나소닉 등이다. 이들 업체에서 생산된 제품의 초기 아이디는 대부분 ‘admin’이고, 비밀번호는 ‘admin’ 또는 ‘12345’ 등인 경우가 많다. IP카메라 설치시 이런 기본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으면 외부인이 영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인시캠 운영자는 웹페이지를 통해 “보안 설정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사이트”라며 “자신의 IP카메라 영상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암호를 변경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인시캠의 영상은 해킹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다”며 “구글 등 검색엔진에 공개된 IP카메라 영상을 모아놓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노출된 영상에는 가정집은 물론 사무실, 식당, 은행, 어린이집 등이 포함됐다. 문제는 영상이 촬영되고 있는 대략적인 위치(우편번호)까지 공개되고 있어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음성지원 카메라까지 등장
지난해 세계 IP카메라 시장 규모(IHS리서치 추산)는 3억5020만달러(약 3830억원)였으며 올해는 4억990만달러(약 4485억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IP카메라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설치가 간단하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10만원대로 저렴한 것도 인기 요인이다. 특히 아기나 강아지를 키우는 집에서 많이 설치한다. 주인이 출근한 뒤 혼자서 집을 보는 강아지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 음성지원 카메라도 나왔다. 포스캠 파나소닉 등 외국산 제품뿐만 아니라 LG유플러스의 ‘맘카’ 등 국산 제품도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경 감시를 위해 CCTV 영상을 일부러 대중에 공개하기도 했다. 2007년 미국 정부는 텍사스주와 멕시코 간의 국경에 200여개의 CCTV를 설치하고 이를 인터넷에 연결해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블루 서보(Blue Servo)’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미국인들이 CCTV 영상을 보다가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를 발견하면 보안당국에 신고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였다. 적은 비용으로 국경을 지키기 위해 고안됐지만 성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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