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 등록하지 않은 맛집부터
소녀시대 등 연예인까지 피해
동네 상점이 이미 쓰는 상호는
등록 없이 사용할 수 있어
[ 김태훈 기자 ]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인 김운규 청년장사꾼 대표(27). 2012년 10월 서울 종로구 금천교시장에 감자튀김과 맥주를 파는 가게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7호점까지 열었다. 상호는 ‘열정감자’로 정했다. 하지만 4호점까지 낸 작년 3월 가게의 간판을 모두 바꿔야 했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상표 브로커가 다음날 열정감자란 상표를 먼저 등록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업을 확장하려던 시기에 분쟁에 휘말리기 싫어 어쩔 수 없이 ‘청년장사꾼’으로 상호와 브랜드를 모두 바꿨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의 상표를 가로채는 상표 브로커들이 청년 창업자들까지 먹잇감으로 삼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이들은 상표를 등록하지 않은 스타트업과 유명인, 맛집 등의 이름을 먼저 출원해 사용료와 합의금을 받아내고 있다.
◆선출원주의 허점 노리는 브로커
상표권은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 일명 ‘선(先)출원주의’를 택하고 있다. 창업 초기 기업, 동네 맛집들은 상표권을 챙길 여력이 많지 않다. 이 같은 빈틈을 노려 상표 브로커들이 활개를 친다. 특허청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상표 브로커로 의심되는 35명이 그동안 출원한 상표만 1만9130건에 달한다. 1인당 평균 546건의 상표를 갖고 있다.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자영업자들이다. 흑돼지고기로 유명한 제주의 맛집 ‘돈사돈’도 상표 브로커로 인해 피해를 봤다. 비법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 상호를 쓰도록 허락했는데 이를 악용해 상표권까지 빼앗아간 것. 창업자인 양정기 사장은 뒤늦게 상표권 무효소송을 내 2심까지 승소했다. 양 사장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비법을 가르쳐주고 상호도 쓰도록 했다”며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상표를 등록하고 다른 가게들에 사용료까지 요구해 직접 돈을 들여 소송까지 냈다”고 말했다.
◆소녀시대 2NE1도 피해
소녀시대 2NE1 등 인기 걸그룹도 상표 브로커들의 공략 대상이다. 데뷔 전 유튜브 등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동영상을 보고 이를 상표로 선점한 사례다. 화장품 가방 의류 등의 상표로 연예인 이름을 출원한 후 이를 사용한 영세상인들에게 사용료를 요구한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인근 지역 돈가스가게의 상표를 한 곳이 모두 등록한 후 사용료를 요구해 분쟁이 생기기도 했다.
상표 브로커의 활동을 막기 위해 특허청도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비정상적 상표 관행을 정상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상표법을 개정해 영세상인이 이미 사용하는 상호는 상표권 등록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상표권 효력을 제한했다. 박성준 특허청 상표디자인심사국장은 “영세상인들은 상호를 먼저 사용한 것만 증명하면 상표를 계속 쓸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며 “바뀐 내용을 알지 못해 아직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은데 관련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에는 동업자, 투자자, 연구용역 수행자 등 특수 관계인이 상표를 가로챘을 때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김영민 특허청장은 “최근 청년 창업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 상당수가 상표 브로커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사용할 의사도 없이 무분별하게 상표를 선점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브로커로 의심되는 출원인에 대해선 상표권 등록심사 등을 엄격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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