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식세계화를 추진하면서 된장과 간장, 소금 등을 한류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농식품 무역적자는 2010년 199억달러에서 2012년 254억달러로 오히려 늘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2년 결산분석 보고서에서 “농식품 수출을 이끈 것은 담배와 주류, 과자 등으로 한식세계화 사업 성과로 보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음식 한류의 주역은 지치지 않는 근성으로 해외시장 문을 두드려 스타 상품을 키워낸 식품기업들이었다. 1993년 중국에 진출한 오리온 ‘초코파이’는 좋은 친구란 뜻의 ‘하오리여우파이’란 이름으로 현재까지 40억개가 팔렸다. 지난해 10월 농심 중국법인의 ‘신라면’ 매출은 누적 10억달러를 넘어섰다. 마오쩌둥의 말을 패러디해 ‘매운 것을 못 먹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라는 광고카피를 만든 도전 정신은 정부의 대규모 지원 없이도 높은 성과를 냈다.
번지수 잘못 찾은 한식세계화
정부의 한식세계화는 애초부터 시장 공략법을 잘못 찾았다는 비판이 많다. 북미시장의 경우 소비자가 많이 이용하는 마트 진열대 대신 식당사업에 집중하면서 많은 기회를 날렸다는 것이다. 단발적인 홍보와 연구개발로 ‘예산 낭비’만 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지난해 5월 월스트리트저널 한국어 인터넷판은 한국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한 논문을 비꼬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많은 예산과 기간을 들인 논문의 결론이 고작 ‘햄버거와 돈가스를 먹은 남성보다 비빔밥과 김치를 먹은 남성의 정자 활동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냐는 비아냥이었다. 뉴욕 맨해튼 시내에 고급 한식당을 열겠다는 계획은 민간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불발에 그쳤다.
실리콘밸리가 워싱턴에 있었다면
정부가 ‘전략적으로 키우겠다’며 애정을 보인 산업들은 자주 휘청거렸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실리콘밸리가 성공한 것은 연방정부가 있는 워싱턴DC와 멀기 때문’이라고 이를 설명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 당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다.
‘녹색성장’을 내건 이명박 정부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구축사업에 해마다 1조원 안팎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세계 태양광 수요의 74%를 차지하는 유럽이 재정위기에 처했고, 중국 업체의 공격적 투자는 공급 과잉을 일으켰다. 서재홍 태양광산업협회 부장은 “회원사 100여개 중 1년 회비 50만원을 내지 못해 사실상 탈퇴한 곳이 40군데”라고 말했다. 강정화 수출입은행 연구위원은 “태양광산업은 최근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이라며 “하지만 정부 육성전략이 타이밍을 못 맞춰 이미 업계가 공멸한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2008년 정부가 태양광과 풍력 등에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 정작 국내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낮아 혜택을 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게임산업의 위기
콘텐츠산업 육성을 내건 정부는 게임산업의 위기를 자초했다. 외국 게임 공세에 안방시장을 내준 가운데 정치권마저 ‘중독’을 이유로 게임산업에 칼날을 세우고 있다. 창의성이 뒷받침돼야 발전하는 게임은 한번 망가지면 그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게임업계가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26억3891만달러(약 2조7877억원).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55.2%를 차지해 콘텐츠산업 중 수출 기여도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밤 12시 이후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강제적 셧다운제, 학부모가 자녀의 게임 가능 시간을 지정할 수 있는 게임시간 선택제 등 정부가 게임산업 규제에 나서면서 각종 성장지표가 하락하고 있다.
‘기업=관리대상’이라는 낡은 시각
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1970년대 개발연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다. 정치적 슬로건을 위해 기업의 사적 계약에 일일이 개입하는 ‘관치’의 망령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정권 초마다 되풀이된 ‘물가관리’, 대기업 억누르기식 ‘투자 활성화’는 박근혜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초 기획재정부는 서민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며 유통업체 담당자를 모았다. 10월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0대 그룹 사장단을 불러 투자와 고용 목표를 점검하기도 했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 통신비 인하정책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억압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이 자율성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정부는 그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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