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기 정책을 의미하는 아베노믹스가 벼랑 끝에 몰렸다.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는 올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뒷걸음질쳤다. 일본의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0.4%(연율 -1.6%) 감소했다. 시장에서는 3분기 GDP가 0.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개인 소비가 예상보다 부진한 데다 주택과 설비투자까지 얼어붙으면서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4월 소비세 인상 영향도 컸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 경제가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해 경기 침체 요건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상황이 이렇자 아베 총리는 다음달 중의원 선거를 하기로 했다.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추가 인상은 1년6개월 연기하는 대신 최대 3조엔(약 28조2700억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국민에게 재신임을 받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성장률 ‘쇼크’…소비세 인상에 발목
지난 17일 발표된 일본의 3분기 GDP는 2분기에 이어 지난 4월 소비세 인상 여파를 벗어나지 못했다. 2분기 GDP가 1.9%(연율 -7.1%) 급감한 데 이어 3분기마저 0.4%(-1.6%) 감소한 것이다. 2분기 성장률이 -7% 정도까지 떨어졌을 때도 소비세 인상 직후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당시에는 3분기부터는 플러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3분기마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자 아베노믹스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증폭됐다. 실물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주가만 올라 자칫 아베노믹스가 ‘돈 잔치’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3분기 개인소비는 전 분기 5.0% 감소에서 0.4% 증가로 돌아서긴 했지만 제자리 걸음 수준이었다. 주택투자와 기업 설비투자는 각각 6.7%, 0.2% 감소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민간 수요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모습이다. 다만 일본 정부의 조기 예산 집행으로 정부투자는 2.2% 늘었고, 수출은 1.1% 증가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과 동시에 금융 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의 ‘세 가지 화살’을 뽑아 들었다. 일본은행은 작년 4월에 이어
지난달 추가 양적 완화를 결정하면서 연간 80조엔 규모의 돈을 시중에 풀고 있다. 이로 인해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엔화가치는 40%가량 떨어졌다. 자동차 등 수출기업들은 올 상반기(4~7월)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했고, 닛케이225지수는 7년 만에 처음으로 17,000선을 넘기도 했다. 기업 이익 증가가 고용 확대로 이어졌지만 임금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 물가상승분을 뺀 실질임금은 지난 9월까지 15개월 연속 감소했다. 소비 회복이 더딘 이유다.
조기 총선 강행…재정 3조엔 더 푼다
결국 아베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음달 중의원 선거를 하기로 했다. 내년 예산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더 늦출 수는 없다는 설명도 내놨다. 의회 해산은 2012년 11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의회를 전격 해산한 지 2년 만이다.
일본 의회는 참의원과 중의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참의원은 4년 임기가 보장되는 반면 중의원은 총리가 언제든지 해산할 수 있다.
총선에선 자민당 재집권이 확실시된다. 지난 총선에 비해 ‘자민당 바람’이 뜨겁지 않아 현 수준(294석) 유지가 힘들 수는 있어도 연립 여당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다만 최근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의회 해산 명분으로 ‘소비세 인상 연기’가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부담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아베노믹스는 실패했다”며 “총선을 장기 집권을 위해 활용하려 한다”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의회 해산을 결정한 데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총선을 통해 재신임을 받은 후 분위기를 반전해 내년 초로 예정된 안보법 개정 등 기존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란 관측이다.
일단 아베 총리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한 데 따른 대응책으로 2조~3조엔 규모의 경기 부양책 수립을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2012년 말 10조엔과 작년 5조5000억엔에 이어 세 번째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다. 이번 경기 부양책은 아베노믹스에서 소외된 지방과 중소기업, 저소득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출 대기업들은 엔저가 가속화하면서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지만 중소기업과 일반 국민은 원재료와 물가 인상으로 부담만 높아졌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일본 엔화 가치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본의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와 철강 등 일본과 경합을 벌이고 있는 업종의 타격이 불가피한 탓이다.
미국 달러 강세 흐름과 가계부채 증가 등을 감안했을 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추가 인하 등의 처방을 내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은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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