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증액심사, 호텔→국회→?…장소만 바꾸고 비공개 고수
감액 심사도 쟁점 비공개…증액은 '은밀한 심사' 되풀이
이태훈 정치부 기자 beje@hankyung.com
[ 이태훈 기자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옛 계수조정소위원회)가 26일부터 새해 예산안에 대한 증액 심사에 들어간다. 예결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학재 의원은 “오는 30일까지 예결위에서 예산안을 확정지어야 하는데 실무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29일 자정까지는 예산 심사를 마칠 예정”이라고 25일 말했다.
하지만 예결위 홈페이지에는 26일부터 29일까지 어떠한 회의 일정도 잡혀 있지 않다. 증액 심사는 공식 회의를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결위 여야 간사(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와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국회 또는 시내 모처에서 은밀히 만나 심사한다.
공식 회의가 아니어서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는다. 여야 간사가 ‘쪽지 예산’ ‘카톡 예산’을 근절하겠다고 강조했지만 회의가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말이 사실인지 알 길이 없다.
19대 국회 첫해인 2012년에는 여야 간사가 서울 중구와 여의도의 호텔을 전전하며 4조원가량을 증액해 ‘호텔방 심사’라는 비판을 들었다. 지난해에는 여야 간사가 호텔이 아닌 국회에서 증액 심사를 하긴 했지만, 비공개로 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올해는 증액 심사 전 진행하는 감액 심사도 막판 쟁점 사업에 대해서는 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통상 예산소위는 감액 심사를 할 때 이른바 ‘풀(pool) 기자단’을 구성해 회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다. 올해도 지난 16일부터 여섯 번 정도 회의를 공개했다. 하지만 야당이 글로벌 창조지식경제단지 조성,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등에 필요한 이른바 ‘박근혜표 예산’에 대해 삭감을 주장하자 쟁점 항목의 ‘흥정’은 밀실에서 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소(小)소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지난 주말 예산소위 밑에 또 다른 소위를 구성해 70여개 쟁점 항목의 삭감 협상을 맡긴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김진태·이현재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김현미·박완주 의원이 소소위 위원으로 참여했다. 소소위 회의 역시 비공개로 했다.
국회의 ‘밀실주의’는 세법을 다루는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도 만연해 있다.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상임위는 소위원회 회의를 공개하고 있으나 유독 조세소위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회법 제57조 5항은 ‘소위원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소위원회의 의결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조세소위는 회의 때 의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비공개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원들도 이 같은 밀실 관행에 대해 할 말은 있다. 예결위 소속 A의원은 밀실 심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 “장소를 공개하면 쪽지 예산 민원이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회의를 공개해야 누가 쪽지 예산을 넣었는지 알 수 있을 것 아니냐”는 반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이태훈 정치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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