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계열사간 사업조정을 넘어 비주력 계열사를 외부에 넘기는 방식으로 사업재편을 확대·가속화하고 있다.
핵심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부문은 육성하고 안되는 것은 과감히 정리하는 '선택과 집중'에 맞춰져 있다.
이에 따라 비주력 계열사의 매각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실적이 부진한 다른 계열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삼성테크윈 등 4개 계열사 한화에 매각
26일 삼성과 한화그룹,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은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 방산 사업 계열사와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등 석유화학 계열사를 한화에 넘기기로 했다.
총 2조원대 규모의 거래로 삼성이 주요 계열사를 국내 다른 그룹에 한꺼번에 매각하는 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3개월 넘게 물밑에서 진행된 이번 매각은 삼성과 한화 양측 모두 '철통보안'을 지켜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한화가 방위산업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삼성탈레스 등 지분 인수를 추진하면서 먼저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이번 매각으로 전자(삼성전자·SDI·전기와 금융(삼성생명·화재·카드)·건설·플랜트(삼성물산·중공업·엔지니어링) 등 주요 계열사에 보다 집중할 수 있고 한화는 방산과 화학 사업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경쟁력이 있는 사업을 키우는 쪽으로 '선택과 집중'하는 전략"이라며 "과거에도 비효율적인 사업을 외부에 매각해 삼성이나 상대 회사 모두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앞서 삼성코닝정밀소재를 코닝에 매각한 것이나 삼성전자 하드디스크 사업부를 씨게이트에 넘긴 것도 선택과 집중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 '선택과 집중' 전략 다른 계열사 이어지나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매각을 크게 두 가지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선 삼성그룹이 강조한 것처럼 경쟁력있는 사업을 강화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과거 재계서열 2위였던 삼성전자는 1995년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는 기업PR광고를 내세우며 1등주의론을 처음 드러냈다.
현재 1위 자리가 흔들리자 "1등이 될 수 없는 계열사를 매각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란 게 우세한 시각이다.
매각 대상에 오른 삼성테크윈은 2011년 방산비리 사건에 연루돼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부정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질타를 받았던 곳. 이후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등을 거쳤지만 주력사업부의 실적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햇다.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 경우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발 공급과잉이 지속되면서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1세기에는 확실하게 1등할 수 있는 사업에만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봐야한다"며 "어설프게 해서는 안되는 시대라는 점을 느껴 경쟁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업은 과감히 떨쳐내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같은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자연적으로 삼성 다른 게열사에 보내는 '경고'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 센터장은 "앞으로 삼성그룹이 우산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며 "역량이 떨어지는 다른 삼성 계열사들도 이 일을 계기로 죽을 각오로 헌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계 한 관계자 역시 "삼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마음 놓고 있는 다른 계열사들에 대한 일종의 신호로 여겨진다"며 "이번 매각이 다른 계열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삼성그룹 사업구조 재편에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재용 부회장 시대의 삼성그룹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첫 대목이기도 하다"며 "그룹을 크게 전자와 금융ㆍ서비스, 건설ㆍ중공업 등 3대 부문으로 재편하는 작업을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봤다.
◆ 지배구조 영향은…제일모직 상장 임박
이날 매각 대상에 오른 삼성테크윈은 개장 직후 하한가로 직행했다. 4개 매각 계열사 가운데 주식시장에 상장된 곳은 삼성테크윈 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테크윈이 한화 지붕 아래 들어가 향후 방산과 항공 엔진 사업 등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면서도 당장은 '삼성 프리미엄'이 사라진 데 대해 우려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높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수준)의 기반이었던 '삼성' 프리미엄이 소멸되게 됐다"며 "주가엔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매각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사업조정과 동시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14일 상장한 삼성SDS와 내달 18일 상장 예정인 제일모직이 지배구조 개편의 키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제일모직은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만큼 상장 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밑그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연구원 "사업구조 개편일 뿐 지배구조에는 영향 미칠 것이 없다"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4.95%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했지만 미미한 수준이고 지배구조 제일 하단에 있는 회사"라고 말했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도 "삼성테크윈이나 삼성종합화학 등은 지배구조 연결 고리에서 하단에 위치한 회사인만큼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삼성테크윈 등 개별 회사 문제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경닷컴 권민경/이지현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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