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법인세 증세론, 명분도 실리도 없다

입력 2014-11-26 20:48   수정 2014-11-27 03:51

"복지 위해 법인세 올리자는 야당
침체기의 경제성장 발목 잡을 뿐
복지 정비하고 과세기반 넓혀야"

김학수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hagskim@kipf.re.kr >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옛말이 있다. 바꿔 생각하면, 자신의 삶이 팍팍하면 주위를 돌볼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정부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 이렇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불거진 법인세 인상 논란을 접하면서 이 옛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올해의 법인세 증세주장이 무상복지 재정파탄과 맞물려서 제기된 탓인 것 같다.

재원부족으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이 중단될 상황이지만, 정치권의 무분별한 복지정책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들에게 인심을 쓰려면 정부의 지갑이 상당히 두둑해야 하는데, 법인세율 인상은 정부의 지갑을 중장기적으로 더욱 얇아지게 하고 무분별하게 확대된 복지제도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특히 법인세 증세는 부자들의 부담이고, 법인세만 올리면 곤란한 재정여건이 한번에 해결되는 듯이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하류 정치의 단면이다.

법인세 세율을 인상하면 단기적으로는 세수가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난 세수로 무상복지를 한두 해 더 유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법인세 증세는 법인의 투자 및 고용과 기업소득의 감소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가계부문의 투자 및 일자리와 소득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결국 법인세뿐만 아니라 개인 소득세와 소비세의 세수감소로 이어지면서 국가재정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게 되고, 법인세 증세의 부담은 모든 국민과 후손에게 전가된다. 무분별한 복지제도에 익숙해진 국민들로부터 무늬만 공짜인 무상복지의 달콤함을 빼앗기는 더욱더 힘들어진다. 무분별한 복지제도와 단순 대증요법적인 재원조달의 악순환은 우리 후손에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만 남겨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법인세율 인하가 대기업들에 특혜를 준 것처럼 오도되고 있는데, 사실 대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최소한의 세액을 결정하는 최저한세율은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 높아졌다. 또 지난해 비과세감면제도의 정비에 따라 각종 세액공제율이 큰 폭으로 인하돼 대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그리고 올 초 지방소득세 계산방식이 변경됨에 따라 약 1조원의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법인세 증세 옹호자들은 감세의 낙수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지만, 법인세를 부담하는 대기업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 않도록 제도를 변경했기 때문에 감세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해 보인다. 또 불안정한 대내외 거시여건 속에서 최근 악화되는 우리 기업들의 실적은 법인세 감세효과를 지워버리기에 충분하다.

2010년을 제외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점에 돈 쓸 곳이 많다고 빚을 늘리거나 법인세를 더 걷는 것은 정책 우선순위에 포함될 명분도 실리도 없다. 제일 시급한 것은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복지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규제개혁, 경제혁신, 창조경제 구현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제고함으로써 꺼져가는 성장동력에 불을 댕겨야 한다.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시점은 지금처럼 돈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 경제가 활성화되고 과열구간으로 진입할 때다. 지금처럼 경기하강 국면에서 경제적 비용이 가장 큰 법인세의 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경기활성화라는 정책목표와 상반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세수부족을 무릅쓰고라도 지금은 감세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지만 재정여건상 가능한 대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남은 대안은 과세기반을 확대하는 것이다.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세부 정책과제를 적극 발굴하고 힘차게 추진함으로써 세율 인상이 아니라 소득증대에 의해 텅 빈 곳간을 자연스럽게 채울 수 있도록 정치력과 정책노력을 함께 모아야 한다.

김학수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hagskim@kipf.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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