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사상 최고액 FA 계약을 이끌어내며 SK 와이번스에 잔류한 최정이 뜻하지 않은 비난에 직면했다. 최근 선수들의 몸값 인플레이션과 맞물려 최정에게도 과한 금액이 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스토브리그 개막 전부터 이번 FA 최대어로 꼽혔던 최정은 우선협상 마지막 날인 26일 원소속팀 SK에 잔류하는 데 도장을 찍었다. 계약금 42억원과 4년간 연봉 44억원, 총액 86억원의 '대박' 계약이었다. 옵션도 포함되지 않은 전액 보장이었다. 이는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와 4년 75억원(계약금 35억원, 연봉 10억원)에 계약한 강민호를 넘어선 역대 최고 대우다.
당시 강민호와 정근우, 이용규가 70억원 내외의 거액 FA 계약을 이끌어내자 일각에선 거품이 심하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차가 있긴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최고 타자였던 심정수가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으며 4년 60억원을 받았던 것과 성적의 괴리가 심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엔 최정 외에도 박용택의 4년 50억원, 윤성환의 4년 80억원, 안지만의 4년 65억원 등 거액 계약들이 연이어 성사되고 있어 "류현진이 있었다면 200억원"이라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통산 85승 평균자책점 4.18의 장원준은 롯데의 88억원도 뿌리쳤다. "야구판이 다 망가졌다"며 "선배들이 FA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기나 하느냐"는 강병규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구팬들은 FA 거품의 '원흉'을 이택근과 김주찬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택근은 2012년 시즌이 끝난 뒤 LG 트윈스에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4년 50억원의 잭팟을 터뜨리며 친정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했다. 당시 이장석 넥센 구단주는 "택근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며 이택근의 몸값엔 '구단이 어려울 때 팔았던 프랜차이즈에 대한 예우'가 포함되어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성적 대비 고가였던 이택근의 몸값은 이후 모종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이택근 정도의 성적이면 50억원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것이다. 이는 수비의 약점이 큰 김주찬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이택근과 같은 4년 50억원을 받아내자 현실이 됐다.
또한 FA 대박을 낸 선수들이 모두 이듬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며 거품론에 스스로 일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국내에선 홍성흔 외에 FA 성공 사례가 없다"고 꼬집을 정도로 수확 없는 경작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최정은 꾸준함과 성장성에서 인정을 받아왔기에 성급하게 거품이란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지난 5년 연속 3할 타율과 4차례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냈고, 데뷔 이후 10년 통산으로 계산하면 타율 0.292, 1033안타, 168홈런, 634타점, 593득점, 119도루, 9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국가대표급 수비는 언급할 필요도 없이 국내 최고 3루수라는 데 이견이 없다. 때문에 최정이 이른바 '먹튀'가 될 가능성은 적다는 게 중론이다. 4년 86억에 도장을 찍었지만 100억설까지 불거졌던 이유다.
(*번외로 최정의 통산 사구는 156개로 이 부문 3위다. 1위는 은퇴한 박경완으로 166개. '마그넷 정'이라고도 불리는 최정의 '페이스'를 고려하면 2015 시즌 최정이 이 부문 1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정의 나이까지 감안한다면 200사구 달성도 가능해 보인다.)
물론 이 대형 계약엔 최근 몇 시즌 용병 농사 실패와 전력 누수가 심해진 SK의 초조함이 더해지기도 했다. 에이스 김광현도 떠나는 마당에 간판 타자 최정까지 놓치면 끝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SK는 최정과의 계약이 성사된 직후 "그동안 팀의 간판선수로서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했고, 앞으로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팬들의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점을 반영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SK 측의 보도자료엔 '84억짜리 선수' 최정이 앞으로 보여줘야 가치도 담겨 있다. 팀의 최고 타자가 아닌 프로야구 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다. 최정에겐 한국시리즈 MVP외에 왕관이 없다.
올 시즌 부상으로 부진했지만 앞선 2012·2013시즌 2년 연속으로 막판까지 박병호와 홈런왕을 다퉜을 만큼 거포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는 점도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다. SK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소년장사가 전국구 천하장사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지금까지 보여준 것 이상이어야 한다. 축배 뒤의 숙제가 남았다. 최정은 가능성이 아닌 현재로, 4년 총액 84억원이 거품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다른 팀으로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던 그의 야구 인생 2막이 올랐다.
한경닷컴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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