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 여행길에 메이지혁명 주역인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을 찾았다. 료마는 일본 근대화의 영웅이다.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고 도쿠가와막부 타도에 앞장섰다. 료마가 있었기에 메이지유신은 성공했다. 일본은 중세 봉건국가를 벗어나 근대 민족국가로 변신했다.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도약하하게 만든 주역이 료마다.
료마가 태어나 청운의 꿈을 품고 자란 고치(高知)현 가츠라하마 바닷가의 료마 동상이 꼭 보고 싶었다. 사카모토 료마를 보러 가는 길은 멀었다. 그의 고향은 일본의 주요 4개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四國) 고치현 최남단. 지금 고치현은 막부시대에 도사(土佐)번으로 불리던 곳이다.
덩치가 크고 사나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도사견’이 이곳의 토종견이다. 도사견은 일본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료마의 동상이 있는 가츠라하마 해변에는 ‘도사이누파크(도사개공원)’이 있다. 개 애호가들은 한번 볼만하다.
교토에서 고치현 남단 가츠라하마까진 대략 400km 거리. 승용차로 꼬박 달려도 4시간 반 이상 걸렸다. 지도상으로 멀지 않아 지인에게 운전을 부탁했으나 막상 달려보니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교토에서 고베를 거쳐 혼슈와 시코쿠섬을 잇는 아카시대교를 거넜다. 가츠라하마는 시코쿠에서도 가장 남쪽 해안이어서 섬을 종단해야 했다.
11월의 시코쿠 기후는 온화했다. 남국의 눈부신 태양 아래 흰 백사장과 푸른 소나무 숲 사이에 료마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사카모토 료마상’은 1928년 건립됐다. 고치현 청년들이 료마의 공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전국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여 만들었다. 일본 전통의상에 허리에 칼을 찬 료마는 바다 건너 멀리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 조국인 일본의 발전 모델로 삼았던 미국을 바라보면서 청춘의 꿈을 키웠던 해변의 소나무 숲 속에 서있다.
사카모토 료마는 1835년 11월15일 고치현(당시 土佐藩)의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친구들로부터 울보로 조롱받을 정도로 겁 많은 소년이었다. 그는 검술을 수련하면서 건장한 사내로 성장했다. 1861년 도사번의 하급무사, 지인 등과 함께 ‘土佐勤王黨’에 가입해 활동했다. 하지만 서양세력을 배척하는 급진적인 ‘양이론’에 반대해 ‘탈번(脫藩)’을 감행했다.
도쿠가와막부시대에 허가 없이 번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지금으로 보면 국적을 버리고 무국적자로 떨어지는 과감한 결정이었다. 료마가 목숨을 걸고 도사번을 탈출한 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을 의미했다. 군왕의 통치 아래 강력한 국가로 일본으로 바뀌어야 서양의 거대 제국들과 맞설수 있다는 게 료마의 생각이었다.
그는 일본땅을 벗어나 세계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힘썼다. 시대에 뒤처진 막부체제로는 서양제국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봤다. 강력한 중앙집권제적 근대 민족국가를 희망했다. 그의 꿈은 체제변혁을 추구하는 하급무사들과 맞아떨어졌다. 료마는 막부가 무너뜨리고 일왕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는 ‘메이지유신’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혁명의 성공을 한해 앞둔 1867년 막부 비호세력들의 습격을 받아 교토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3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료마는 떠났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은 일본의 개방과 근대화를 이끌었다.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경제 선진국으로 변신한 것은 시대를 앞서간 료마같은 선각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만이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서양 제국들과 어깨를 견주는 근대국가로 변신한 것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내건 료마 덕분이다.
메이지유신으로 제국의 대열에 끼었던 일본은 1980년대 세계 최고 경제강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1990년 대 이후 20여년째 장기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본을 모델로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했다. 선진국에 진입도 못해보고 중진국에서 주저앉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저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길거리에는 조기 은퇴자들이 넘치고 대학문을 갓 나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불만이 커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제외하면 50여년간 고도성장을 지속해온 대한민국 경제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저출산, 고령화까지 겹쳐 사회 활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에다 IT혁명으로 세계 각국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당쟁에 빠져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패망은 1910년이었다. 료마의 고향에서 한국의 미래를 떠올려봤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져 변화를 몰고올 료마같은 인물이 그리워지는 시기다. 한국의 료마는 누가될까.
한경닷컴 최인한 뉴스국장 janus@han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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