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낮은 임금을 좇아 한국을 빠져나간 기업이 6041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수출입은행이 분석한 해외투자 통계에 따르면 2003년부터 작년 9월 말까지 해외에 새로 법인을 설립한 국내 기업은 3만8634곳이었다. 이 가운데 15.6%인 6041곳이 설립 목적을 ‘현지 국가의 낮은 임금을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 기간 한국을 탈출한 기업들이 현지에 투자한 금액은 121억달러(약 12조8865억원)였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스탠더드, 글로벌 경쟁력, 고용창출 등 세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견근로 활용, 佛·英보다 훨씬 낮아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데는 국내의 노동시장 규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불법파견 논란은 국내 기업이 예기치 않은 인건비 상승 부담에 직면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자동차는 2004년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현대차의 사내하청 근로자를 불법파견으로 판단해 검찰에 송치한 뒤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
불법파견 이슈는 최근엔 서비스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 이마트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23개 지점에서 불법파견 1978명을 적발했다. 농협유통(하나로마트), 이랜드리테일, 태광그룹 계열의 유선방송사업자(SO)인 티브로드홀딩스, 삼성전자 제품의 수리서비스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 등도 논란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불법파견이 속출하는 원인으로 지나치게 까다로운 파견근로 규제를 꼽는다. 한국에서는 컴퓨터 관련 전문가 등 32개 업종에서만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으며 기간도 최장 2년으로 제한된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는 파견 형태가 아닌 도급 형태로 외부에서 근로자를 받아 쓰는 경우가 많았다.
파견은 ‘원청업체가 인력파견업체의 근로자를 자신의 작업장에 데리고 와서 쓰는 것’을, 도급은 ‘제품 포장 등 특정 업무를 통째로 하청업체에 넘기는 것’을 뜻한다. 파견근로에는 노동 관련 규제가 있지만 도급에는 없다. 추후 고용부 근로감독이나 재판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파견 형태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받으면 꼼짝없이 불법파견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다.
실제 국내 임금 근로자 가운데 파견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0.5%로 미국 1.9%, 프랑스 2.2%, 영국 3.6%보다 훨씬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파견 가능업종과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거나 둘 중 한 가지만 규제하고 있다.
까다로운 노동법 규정도 원인
노동법 규정 또한 기업의 탈한국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소송이 봇물 터지기 시작한 통상임금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대법원은 대구의 버스회사 금아리무진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시간외근로 수당을 다시 계산해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올해 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미지급 임금 소급청구권을 제한하면서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해 노사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GM을 보면 통상임금의 ‘파괴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GM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도 3400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냈다. 노조의 통상임금소송에 대비해 8140억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반영한 탓이다.
이런 문제가 생긴 근본 원인은 근로기준법에 있는 임금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주는 금품’이라고 규정한 뒤 이를 기준으로 시간외근로 수당을 계산한다.
이와는 별도로 ‘직전 3개월 동안 받았던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 일수로 나눈 것’을 뜻하는 평균임금도 있으며, 평균임금으로는 퇴직금을 계산한다. 정부가 1970년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통해 임금 시장에 인위적으로 관여한 탓도 있다. 이 과정에서 노사는 편법으로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신설했고 그 결과 기본급은 적고 각종 수당 비중은 높아지는 현상이 빚어졌다.
독일과 영국은 법령 대신 노사자율로 시간외 수당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임금, 할증률 등을 정한다. 미국도 시간외근로에 대한 할증률이 한국처럼 법령에 나와 있기는 하지만 기본급(regular wage)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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