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열사의 땅에 뿌려지는 땀

입력 2014-12-14 20:37   수정 2014-12-15 05:05

중동 현장 'EPC 턴키 시공' 뿌듯
한국인 특유의 끈기·애국심 느껴
과열 경쟁 탓 '적자 공사' 안타까워

정몽준 < 전 새누리당 대표 >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왔다. 현대중공업이 홍해 해변에 짓고 있는 두 개의 발전소 현장을 둘러봤다. 똑같은 사양의 두 발전소는 각각 2640MW의 전력을 생산하게 되는데 2년 후 완공되면 합쳐서 사우디 전력공급의 15%를 맡게 된다. 고압에서 증기를 발생시키는 초임계압 방식이어서 일반 발전소보다 효율이 높은데 한국으로서는 처음 해보는 첨단 공법이다. 두 곳 모두 아름다운 홍해를 끼고 있지만 사막의 끝자락이기도 하다. 수시로 부는 모래바람은 서울의 황사에 비할 게 아니다.

각각 100만평 부지에 세워지는 방대한 규모의 두 발전소는 세계 최대의 토목건설 공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사 금액은 합쳐서 65억달러 규모다. 제다 발전소는 3분의 2 정도 공정을 마쳤다. 현재 1만명 정도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데 내년 5월이면 1만5000명이 된다. 하나의 소도시가 사막에 세워져 있는 셈이다. 이들의 숙소와 식당, 각종 후생시설을 마련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각 발전소에 짓는 건물만 해도 각각 253개나 된다. 바다에 방조제와 교량, 그리고 대형 유조선의 접안시설을 만들고, 수천t의 보일러와 터빈이 설치되는 구조물을 건설하고, 축구장보다 큰 기름 탱크들을 설치하고, 220m 높이의 굴뚝을 세우고 하는 일들을 대부분 한국 기술로 하고 있다. 근로자와 실무 엔지니어들은 인도, 네팔, 필리핀 등에서 온 다국적군이다.

발전소를 설계하고, 각종 부품과 자재를 조달하고, 토목과 건축을 비롯해 시공을 하는 이른바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턴키 공사를 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한국이 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 국민들을 모두 초청해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로 자부심을 느꼈다.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가 목표이던 1970년대에 시작된 중동진출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열사의 나라에서 산업전사들이 벌어들인 오일달러는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중동 드라마(중동 대역사)’의 의미는 저평가되고 있다. 지금은 근로자보다는 엔지니어와 관리 직원들이 파견되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모래폭풍과 싸우는 감투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오지에서 일하는 이들은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아침식사를 하고 6시부터 근로자들과의 체조로 업무를 시작한다. 이들에게 매일매일은 전쟁과 같다.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 오후만 잠깐 쉬고 매일 쳇바퀴 같은 생활이 이어진다. 중동 지역의 특성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술 한잔 할 수도 없다. 4개월 또는 6개월에 한 번 주어지는 가족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이들이 스트레스를 이기는 길은 동료들 간의 위로와 격려뿐이다. 10여년씩 해외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서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애국심을 느끼게 된다.

산업전사들의 이런 분투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소식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이 과열경쟁을 함으로써 중동에서의 공사가 커다란 적자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규모 현장일수록 적자폭은 크다. 지난 2년간 한국 기업들의 누적 적자가 8조원 수준이라는 얘기다. 단기 실적에 쫓긴 경영진의 무리한 결정 때문에 산업전사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고 있다.

사우디를 떠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사막은 우울한 마음을 더욱 깊게 했다. 모래바람의 흔적이 추상화처럼 그려져 있는 땅, 그 속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외롭게 싸우는 산업전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노력을 헛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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