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오늘 12월 16일, 한국석유공사가 발표한 두바이유 가격은 60달러 지하층 바닥이 깨지며 59.56달러에 거래됐습니다. 거의 반년 사이에 반도막에 가깝게 기름 값 이 떨어졌습니다.
중동전에 따른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고 ‘피크오일’에 따라 배럴당 140달러대 (2008년 8월) 원유가를 목격할 때 박힌 관념. “기름 값은 항상 오른다.” [피크오일 Peak Oil = 중국 중심으로 글로벌 석유 수요가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2000년대 중반 크게 주목받았다. 석유생산은 어느 때 정점을 찍고 이후 감소한다는 이론. 이에 따라 유가가 최대 14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때문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식으로 속절없이 떨어지는 현재의 유가에 대해서 적응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무엇보다 국제적 음모에 따라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진 이번 유가 속락이 언제 또 ‘반전의 의미 (반등 후 고공행진)’를 깨닫게 할지 몰라 현 상황이 결코 반갑지 많은 않다는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음모론은 1번 시나리오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설. 2번 시나리오는 사우디가 미국의 ‘타이트 오일’을 망가뜨리기 위해서란 설. 2번의 경우 실제 석유수출국기구 OPEC 내에서 산유량이 가장 많은 사우디가 미국의 신규 시추프로젝트가 수익성의 악화로 중단되길 희망하며 현재의 가격 하락을 되레 부채질 한다고 알려졌다.]
[타이트 오일 Tight Oil= 모래와 진흙이 굳어진 지하 퇴적암층에 있는 원유. 탄소 함유량이 많고 황 함량이 적은 경질유. 셰일층이라는 매장위치 때문에 셰일오일 Shale Oil로도 불림.]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외적으로 “다가오는 을미년 석유 가는 어디로?”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이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LG경제연구원은 이와 관련 오늘 16일 발표한 ‘2015년 세계 경제 이슈’ 제목의 보고서에서 원자재 가격 하락의 파장을 가장 주요한 항목으로 다뤘습니다. 이 파트를 쓴 이광우 책임연구원은 “최근 3개월 사이 40%가량 떨어진 유가는 을미년인 내년에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공급량이 단시일 내 줄어들기 어렵고 예상수요는 오히려 점점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입니다. 국제석유 시장의 경우 향후 2~3년은 공급 확대가 수요보다 빠르게 전개될 것이란 게 이 책임연구원의 설명입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석유가 속락을 부른 주요한 원인인 미국의 타이트 오일 생산단가는 배럴당 60~70달러 대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셰일 광구의 1회 굴착 사이클이 1~2년 정도이고 생산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어 생산단가 이하의 유가 수준에서도 최소 1년 정도 생산량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깁니다. 다음은 이 책임연구원의 글 전문.
※원자재 가격 하락의 파장=국제원자재 가격이 4년래 최저 수준이다. [그림 1 참조]. 올해 상반기까지 배럴당 100달러대 이상을 유지해 온 두바이유 가격은 최근 50달러 후반으로 반년 동안 40달러 이상 떨어졌다. 구리와 밀 가격은 2011년 연초 보다 각각 32%와 25% 하락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은 공급요인이 주도하고 있다.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원자재의 수요 증가세는 둔화되는 반면 공급은 빠르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엘리뇨 등 기상이변과 이란 핵개발 사태 같은 주요 원자재 생산국에서 공급차질이 발생할 때마다 원자재 가격은 단기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원자재 시장의 수급흐름을 보면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 회복에도 신흥국 성장은 완만한 수준에 그친 결과, 원자재 수요가 예전과는 달리 크게 늘지 않고 있다. 반면 원자재 가격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무르면서 투자가 지속됐고 기상여건도 나쁘지 않아 공급 확대는 계속되고 있다.
수요증가 보다 빠른 공급확대가 수년 간 계속된 결과 철광석 석탄 등에서는 주요 메이저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공급을 늘리고 있다. 호주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채산성 낮은 중소형 자원기업들은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세계적인 광물기업인 BHP 빌리턴과 리오틴토는 생산비용 개선에 노력하면서도 철광석 생산량을 내년에도 늘릴 계획이다.
연료탄 시장에서는 올 상반기에만 공급량이 900만톤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석유 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국제석유 시장에서 오랫동안 OPEC이 공급조절을 통해 가격을 통제해 왔다.
그러나 세계경제 부진과 연비규제 강화로 세계 석유수요 증가세는 미약해지는 반면 미국에서는 채굴기술 발전으로 원유생산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세계적으로 석유공급 여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타이트오일 생산량은 2009년 하루 2500배럴에 그쳤으나 2013년에는 하루 384만 배럴로 미국 내 원유생산의 거의 절반 (47%)을 차지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타이트 오일 생산량이 당초 예상 수준을 뛰어넘으면서 급기야 올해 7월부터 나이지리아는 미국으로의 원유 수출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도 3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OPEC의 시장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제2차 오일쇼크 이후 영국 등 비OPEC의 원유생산 증가에 감산으로 대응하면서 시장 점유율이 60%에서 35%로 축소됐던 사우디를 중심으로 OPEC이 이번에는 가격을 지지하기보다는 시장점유율 사수를 목표로 공급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그림 2 참조]
감산을 통해 유가를 방어할 경우 채산성을 확보한 미국 타이트 오일이 현재의 빠른 증가세를 이어가면서 OPEC의 입지가 더욱 축소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의 약세 국면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석유 시장의 경우 향후 2~3년은 공급 확대가 수요보다 빠르게 전개될 전망이다.
미국의 타이트 오일 생산단가는 배럴당 60~70달러 대에 집중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셰일광구의 1회 굴착 사이클이 1~2년 정도고 생산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어 생산단가 이하의 유가 수준에서도 최소 1년 정도는 생산량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유가 하락은 곡물과 비철금속 등 다른 원자재의 생산비용을 낮추면서 이들의 공급경쟁국면을 연장시킬 것이다. 기상이변과 지정학적 긴장 등으로 인한 돌발적 공급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원자재 가격은 약세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원자재 가격약세는 세계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원자재 수입국의 경우 무역수지 개선과 물가하락으로 구매력이 증가하고 확장적 거시정책이 가능해진다면 성장 활력이 높아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유가 하락의 긍정적인 효과가 선진국에서는 과거에 비해 작을 수 있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유로존과 일본 등에서 물가 하방압력이 높아지면서 경제심리 위축과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나타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국내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셰일개발이 지연되면서 투자와 고용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 원자재 수출국들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면에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광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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