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M&A로 대형화 꾀하고
고부가 특화제품으로 승부 걸어야
남장근 <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namjk@kiet.re.kr >
국제유가 하락세가 가파르다. 국내 수입 원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5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110달러 선을 웃돌던 두바이유였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와 브렌트유도 각각 50달러대로 내려갔다. 이는 셰일오일 생산을 늘리고 있는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간 샅바싸움, 비OPEC 국가의 증산 및 자동차연비 개선, 유럽연합(EU) 및 일본의 소비량 감소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유가 추세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돼 한국 석유화학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석유(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특히 국제유가 추이에 민감하다. 최근의 국제유가 하락으로 원료 수입가격이 내려가 비용 부담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석유가격에 직접 연동된 석유화학 완제품 가격 역시 크게 하락해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또 지속적인 가격하락을 예상하는 구매업자들이 석유화학제품 구입 시기를 늦추고 있어 석유화학업계는 판매가격 하락에다 재고 누적 부담까지 안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는 장기화되고 있고,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는 대형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석탄화학 생산 확대 및 자급률 제고 등 공급은 증대되고 있는 데 반해 수요부진은 이어지고 있어 중국으로 수출을 늘려야 할 한국 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거래제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시행되면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힘입어 승승장구해온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지난해 일본을 누르고 에틸렌 환산 생산능력 기준으로 세계 4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원료가격이 경쟁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범용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은 오래 전부터 과잉상태였다. 중동, 중국, 인도 등 후발국의 경쟁적인 대형 플랜트 신·증설로 공급과잉은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더구나 나프타를 기반으로 한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중동의 에탄가스나 북미의 셰일가스, 중국의 석탄기반 화학산업에 비해 원가경쟁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위에 있다. 개별 기업 규모가 작아 규모의 경제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데다 참여기업까지 많아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범용 사업부문은 이번 유가하락이 아니더라도, 거의 한계상황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재편 및 고도화가 절실한 까닭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업체 수는 줄이고 규모는 대형화하며, 해외진출을 확대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키우는 등 전문화가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한화그룹이 삼성그룹 석유화학 부문을 인수한 것은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정부·채권단에 의한 반강제적 인수합병(M&A)이 아니라 민간기업 자율에 의한 구조조정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행히 한국 석유화학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미국 등 저렴한 원료 산지에 현지기업과 합작으로 대형 플랜트를 건설 중이거나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전자소재, 친환경 바이오화학소재 등 부가가치가 높은 특화제품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범용제품의 비중 축소 및 고부가가치화, 해외진출은 상당한 위험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정부는 일본 등의 사례를 철저히 연구해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의 근본적인 개편을 중장기적 과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남장근 <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namjk@kiet.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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