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경기 '한파 주의보'] 송년회 1차로 끝…식당가 주차장 8시면 '텅텅'…연말 대목 실종

입력 2014-12-21 20:53   수정 2014-12-22 03:40

소비 침체 장기화

역삼동 횟집 "예약 손님 작년보다 30% ↓"
'증권맨 감원' 여의도 음식점도 매출 급감



[ 유승호 / 강진규 / 이현동 기자 ]
지난 18일 오후 7시30분 서울 다동에 있는 한 전통주점. 저녁 장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간이지만 손님은 열 팀이 채 되지 않았다. 20개가 넘는 테이블 중 빈자리가 더 많았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 탓인지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근처 유료 주차장에선 차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주차장 관리직원은 “2~3년 전 이맘때면 저녁 시간에 차들이 줄지어 들어왔다”며 “요즘은 송년회도 안 하고 집에 가는지 오후 8시만 넘으면 들어오는 차는 없고 나가는 차만 있다”고 말했다.

연말 특수가 실종된 모습이다.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이 송년회와 회식을 줄이고 지갑이 얇아진 가계마저 소비를 줄이면서 연말 경기가 날씨만큼이나 냉랭하다.

“연말 장사 10년 만에 최악”

서울 다동 역삼동 여의도동 등 기업과 금융회사가 밀집한 지역의 음식점들은 단체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상인들은 연말 특수는커녕 평소보다도 장사가 안 된다고 토로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다동의 한 등갈비집에는 오후 8시가 넘어서까지 테이블 10여개 중 세 개가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10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김동혁 씨는 “장사가 이렇게 안되기는 처음”이라며 “예전엔 연말 단체손님이라고 하면 30명이 기본이었는데 올해는 20명 손님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19일 저녁 찾아간 여의도동 아일렉스상가의 칼국수집에선 사장과 종업원들이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가게 주인은 “증권사 구조조정 여파가 주변 상권에 그대로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지난 1년 사이 영업점 200여개를 없애고 4000여명을 감원했다.

테헤란로를 끼고 있는 역삼동 상권에서도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역삼동에 있는 한 참치횟집 종업원은 예약 현황을 적은 보드를 보여주며 “작년보다 30%는 줄었다”고 했다.

1차만 하고 오후 10시 전에 해산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고 송년회도 간소하게 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연말 경기를 더욱 가라앉게 하고 있다. 손님 수도 줄었지만 단가가 낮아지고 머무는 시간도 짧아졌다는 게 상인들의 한결같은 푸념 소리다.

역삼동의 한 고깃집 주인은 “생등심이나 갈비 주문은 거의 없고 삼겹살만 팔린다”며 “술도 많이 안 마시고 오후 9시쯤이면 대부분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그 덕에 손님들에게 문닫을 때가 됐으니 나가 달라고 조르는 일도 줄었다”며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직장인 장영기 씨는 “송년회를 해도 팀 단위로 조촐하게 하는 분위기”라며 “회사 차원에서 2차는 되도록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다동의 한 노래방은 오후 9시 가까운 시간까지 카운터에 사람이 없었다. 노래방 종업원은 “손님이 별로 없어서 사장도 아직 안 나왔다”며 “송년회를 1차에서 대부분 끝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차에서 식사와 반주만 간단히 하고 귀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오후 9~10시 사이 주점보다 커피숍이 더 붐비는 풍경도 눈에 띄고 있다.

개시도 못하는 전통시장

음식점만이 아니다. 송년회가 줄면서 상가 근처에 있는 주차장은 해가 지기 무섭게 차가 빠지기 시작한다. 서울 서린동의 한 주차장 관리직원은 “작년 연말엔 주변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는 차가 30대 이상 차 있었다”며 “요즘은 15~20대 이상 들어오는 날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송년회가 줄고 간소해지면서 숙취해소 음료도 판매가 줄었다. 세븐일레븐이 지난 1~18일 매출을 집계한 결과 숙취해소 음료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가량 감소했다.

전통시장 경기도 살아날 줄 모른다. 21일 오후 7시 남대문시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상인들은 “장사도 안되고 날씨도 추운데 일찍 들어가자”며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노점에서 벨트, 양말 등을 판매하는 송석규 씨는 “주변 상인 중 개시도 못하고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며 “외국인 관광객들도 물건을 많이 사지 않고 값을 깎으려고만 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유승호/강진규/이현동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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