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탈상(脫喪) 김정은의 홀로서기 조건

입력 2014-12-22 20:55   수정 2014-12-23 04:57

홍영식 정치부장 yshong@hankyung.com


북한 김정일은 집권시절 경제 개방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아버지 김일성의 유훈통치가 끝난 2000년 이후부터다.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천지개벽했다”고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상하이 방문 이후 경제개혁 조치인 ‘7·1경제개선관리’를 추진했다. 금강산관광특구법도 제정해 관광객을 더 많이 올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김정일 개방정책, 군부에 막혀

2002년 북한은 신의주특구 추진을 발표했다. 2010년 8월엔 동북 지역 창춘에 있는 중국 대표적 자동차 생산업체 이치(一汽) 공장을 방문했다. 이 때문인지 2000년대 초반부터 북한식 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불리는 ‘장마당’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 북한의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2000년 이후 10년간 2005년과 2008년을 제외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김정일은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일부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김정일 체제를 떠받치고 있던 군부 강경파의 반대가 가장 큰 이유였다는 게 우리 당국과 전문가들의 일관된 분석이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의 혁명동지들의 벽을 못 넘었다. 변화 필요성과 체제 경직성 사이에서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2011년 12월 북한 권력자가 된 김정은은 아버지의 이른바 ‘핵·경제 병진노선’을 이어받았다. 5개의 경제특구를 지정했다. 도마다 한두 곳씩 총 19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하는 등 외자 유치에 적극 나섰다. 관광사업을 새 외화벌이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우상화, 유일영도, 현장지도 등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 관행도 이어받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아버지가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한 게 하나 있다. 군부를 뒤흔든 것이다.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한 대표적 군부 강경파 김격식과 김영철을 전격 강등시킨 게 대표적 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한 김격식에 대해 김정일이 “격식이는 나와 격식 없는 동무”라고 하며 줄곧 힘을 실어줬으나 김정은은 한순간에 대장에서 중장으로 내려앉혔다. 장성들 강등 사례가 31건이나 됐고, 복권 조치를 한 것은 19건이다. 장성택 전격 숙청과 같은 공포정치를 통해 군 장악력을 높였다. 김정일 시대 통치 기반이었던 ‘선군정치’ 구호도 사라졌다. 김정은이 마음만 제대로 먹는다면 개방 정책을 밀고가는 데 큰 장애물이 없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은 시대 3년 동안 외자 유치 실적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외부적인 상황도 좋지 않다.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추진과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발표는 북한을 더욱 고립으로 몰아가고 있다.

핵 포기 없이 체제생존 못해

핵심은 결국 핵문제다. 핵도 가지고 경제발전도 하겠다는 병진노선으로는 체제 생존과 경제발전 기회를 잡을 수 없다. 남의 나라를 해킹하고 마약을 거래하는 것으로 주민들을 먹여살릴 수는 더더욱 없다. 3년 탈상을 마친 김정은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핵을 포기하고, 그에 따른 서방 지원을 받아 경제발전에 나서는 것밖에 없다. 겨우 서른 살인 그가 아버지도 못했던 군부 다잡기에 성공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아버지의 실패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 그도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홍영식 정치부장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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