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용 창출은 국가적 사명
기업 투자환경, 전면적 개선해야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해외에 체류하다 귀국하면 자녀의 한글 능력 부족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미국 유학을 마친 신참 교수시절 여러 해프닝을 겪었다.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지내다 보니 아내와 다투는 일도 생겼다. 휴일 새벽부터 학교에 갔다 늦게 돌아왔더니 아내가 이불을 싸서 학교로 돌아가라며 불만이 많았다. 조용히 서재에 앉아 있으니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다가와 “사람이 왜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순간 아내가 일부러 시킨 질문으로 생각하고 “먹고살려고 일하지”하며 소리쳐 돌려보냈다.
문제는 다음날 생겼다. 아이가 바른생활 시험에서 아빠 때문에 전교적으로 망신을 당했다며 난리였다. 객관식 시험문제는 ‘사람은 왜 일하는가?’였다. 정답은 ‘보람을 얻으려고’였는데 아이는 첫 번째 선택지인 ‘먹고살려고’를 택했던 것이다. 그제야 바른생활 교과서를 살펴보니 ‘사람은 일하면서 보람을 얻는다’로 서술돼 있었다.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줬는데 묘한 상황이 생겼고, 웃자고 만든 오답지에 한글 서툰 아이가 걸려든 것이다.
한국 근대사에서 국민의 먹고살 기반을 본격적으로 조성한 대역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외화 밑천 마련을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냈고 월남 파병을 결단하기도 했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중화학공업 기반의 대기업이 위용을 갖췄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일하는 보람’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1977년 11월23일 열린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 석상에서 “기술자와 기능공이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처우 개선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던 신문기사가 검색된다. 그러나 일부 기업인은 지나친 우월감으로 마치 먹고살 은전을 베푸는 것처럼 임직원을 종 부리듯했다. 한보사태 국회 청문회장에서 “머슴이 뭘 압니까?”라고 내뱉은 정태수 망언에 온 국민이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청년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SK와 LG 직원의 자긍심과 소속감이 특히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 선친인 최종현 회장이 제창한 슈펙스(SUPEX)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슈펙스는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을 의미한다. 구성원 스스로 본인의 역할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셀프리더십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고 더 높은 성과를 얻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이 옥중 저서에서 밝힌 ‘사회적 기업’ 육성에 대한 기대도 높다.
SK 사업영역 중에서 통신은 경쟁이 극심하고 석유화학도 장기 불황국면에 들어섰다. 반도체는 과감한 선도적 투자가 필수다. 보다 중요한 과제는 회계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독립적 사외이사를 통한 지배구조를 내세웠지만 외부세력이 끼어들어 회계 근간을 흔드는 위기를 막지 못했다. 최상 수준의 내부통제로 회계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자본시장에 확실히 심어야 한다.
LG는 ‘노사관계’ 대신 ‘노경관계’라는 용어를 쓴다. 사용자로 군림하는 세력은 없고 일하는 근로자와 경영을 맡은 경영자만 있다는 것이다. 분리된 GS와 LS도 마찬가지다. 구본무 LG 회장과 허창수 GS 회장은 소박한 리더십으로 정평이 났다. 그러나 강하게 밀어붙이는 추진력 부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순식간에 밀려난 휴대폰 시장을 따라잡지 못했고 반도체 빅딜 과정에서 억울하게 빼앗긴 하이닉스를 되찾을 기회도 놓쳤다. 현대건설과 오일뱅크 되찾기에 집중했던 현대가(家) 형제와 비교된다. GS도 정유사 호황 시절 축적된 재원에 대한 적절한 투자 기회를 찾지 못했다. 내부경쟁을 강화함으로써 추진력을 끌어올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새해가 되면 수많은 졸업생이 쏟아진다.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는 보람을 펼칠 터전일 뿐만 아니라 ‘먹고살 길’이다. 청년 일자리는 세계 각국이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국가적 과제다. 기업인이 ‘일하는 보람’ 창출에 매진할 수 있도록 투자 환경의 획기적 개선이 시급하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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