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박근혜 대통령의 세모(歲暮)

입력 2014-12-28 20:54   수정 2014-12-29 05:33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


[ 조일훈 기자 ] 박근혜 대통령에겐 올 한 해가 최악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막판엔 ‘비선 실세 개입 의혹’까지 불거져 리더십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의혹’ 등을 놓고 끝없는 진실 공방에 휘말리기도 했다.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12월2일 통일준비위원회)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에는 지칠 대로 지친 피로감이 짙게 배어 있다.

경제만 살리는 묘책은 없어

그럼에도 박 대통령에게 “올 한 해 수고하셨다”는 간단한 덕담조차 건네기가 어렵다.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 실망을 넘어 분노하는 사람들이 늘어서가 아니다. 지지율 하락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피해 가지 못했다. 20%대 지지율로도 국정은 쉼없이 돌아갔다.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이 말끔하게 규명되지 않아서도 아니다. 오히려 비선 개입 의혹사건의 핵심, 이른바 ‘박관천 문건’은 대부분 사실 무근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누군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를 미행했다는 내용은 작성자의 지적 수준을 의심케 한다.

박 대통령이 이런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한 데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기 책임 아래 ‘찌라시’를 ‘찌라시’라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당사자다. 수사에 영향을 미칠 의도였다면 공개적으로 언급했을 리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일컫는다는 뜻)’는 어느 쪽에서 봐도 다의적이다. 도무지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다는 지식인들의 고백에는 냉소가 절로 묻어난다.

왜 경제부장이 이런 정치적 칼럼을 쓰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모든 난맥상이 올해 경제를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크고 작은 사고에 넌덜머리를 냈고 정부는 무기력했다. 경제 주체들은 지갑과 금고를 닫고 좌고우면에 빠졌다. 인사는 공전(空轉)했으며 참모들은 몸을 던지지 않았다. 기자가 끝내 대통령에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청와대에 세모(歲暮)는 없다. 구조개혁과 경제활성화를 표방한 새해 국정은 난제 투성이다. 진중하면서도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다른 것은 다 놔두고 경제만 살리는 묘책은 있을 수 없다. 이제 다 잘해야 한다. 인사 문제는 어떡하든 잡음을 줄여야 한다. 새해부터 대규모 인사청문회를 열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영방송의 ‘짜깁기 보도’ 한 방으로 총리 후보자가 낙마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규모 인사청문회 안돼

세간에서 제기하는 소통 부족 문제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소통은 국정을 향한 의지이자 법치여야 한다. 다만 그 형식과 통로가 담화나 수석비서관 회의 일색이었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가 대면보고를 안 받는다는 관가의 얘기도 마냥 흘려들을 것이 아니다.

선거가 없는 내년이 경제개혁의 ‘골든 타임’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시한은 6개월이다. ‘2016년 총선 정국’은 내년 하반기부터 일찌감치 가동될 것이다. 지지율에 신경 쓰고 각종 인사 문제로 국정 동력을 빼앗길 겨를이 없다. 박 대통령의 노고에 대한 덕담과 위로는 2015년 세밑으로 넘어간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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