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맞춤형 서비스로 1000억 투자유치
일선 공무원 업무태도가 기업만족도 갈라
[ 강현우 기자 ]
중소 의료기 업체의 A대표는 본사 건물 용도변경을 위해 서울지역의 한 구청 건축과를 찾았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니 건축물 현황 도면을 설명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구청 앞 건축사사무소에 가서 대행해 오라”며 창구 처리를 거절했다. 건축사사무소에 가보니 300만원대의 대행료를 요구했다.
A대표가 다시 구청을 찾아가니 담당 공무원은 ‘저렴한 곳’이라며 다른 사무소를 소개해줬다. 그러나 저렴하다는 곳의 대행료도 90만원에 달했다. A대표는 이런 식으로 여섯 번 구청을 찾아가 애원한 끝에 그 공무원으로부터 “이번만 창구 처리해준다”는 답을 받았다. 그는 “공무원이 자신의 편의만 따져 여섯 번이나 찾아오게 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여전한 지자체 재량권 남용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첫 번째 민·관 합동 규제점검회의의 주된 의제는 지방자치단체 규제였다.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규제를 풀어도 현장에서는 막혀 있다거나 일부 지자체 공무원의 면피성 행정 또는 재량권 남용, 관행을 앞세운 민원 처리가 문제라는 지적이 수차례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부터 전국 226개 기초 지자체와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를 대상으로 한 규제지도 조사에서도 이 같은 지자체 공무원들의 과도한 규제권 행사가 기업하기 어려운 큰 이유로 꼽혔다.
지자체들은 정부가 푼 규제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2009년 계획관리지역(개발이 예상되는 지역 등)의 공장 설립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토계획법 시행령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별로 계획관리지역에 55~79개 업종의 공장 설립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경기 김포, 강원 화천 등 8개 지자체는 여전히 공장 설립을 막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포시는 지자체 조례도 아닌 공무원 업무처리지침으로 70여종의 환경오염유발업종 공장 허가를 제한하고 있었다. 공무원 재량만으로 친환경 시설을 갖춘 공장조차 지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김포시의 공장 승인·건축 인허가 기간은 68일로 전국 평균(42일)의 1.5배에 달했다.
1000억대 투자 확보한 충남 논산
대한상의의 규제지도 조사는 주관적 평가인 지자체 행정·규제에 대한 기업 만족도(기업 체감도)와 객관적 분석인 기업하기 좋은 지자체(경제활동 친화성)로 나눠 진행됐다. 주관적 평가는 물론 객관적 분석에서도 결국에는 공무원의 업무 태도가 결정적인 잣대로 작용했다고 대한상의 측은 설명했다.
가장 기업하기 좋은 지자체로 꼽힌 충남 논산시는 경제지원과, 건설과 등 소속 부서를 가리지 않고 공무원들이 기업 유치를 위해 뛴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들이 30여개 기업을 방문해 저렴한 토지를 알선하고 맞춤형 행정서비스 등을 제시한 결과 2년 동안 8개 기업을 유치해 1000억원대 투자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대전에 본사를 둔 동양강철은 수도권에 신공장 건설을 추진하다가 논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논산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충청남도청 등을 설득해 동양강철 신공장 부지를 국비 보조금이 없는 일반농공단지에서 3.3㎡당 7만원의 국비를 받을 수 있는 전문농공단지로 변경했고, 이 덕에 동양강철은 47억원의 국비 지원을 받게 됐다.
영월 공장승인 3일
반면 논산과 서쪽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는 충남 부여군은 가장 기업하기 힘든 도시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국토계획법에서 유통상업지역에 들어설 수 있는 건물을 지자체 조례로 정하도록 한 가운데, 부여군만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음식점 등 16개 업종 건립을 제한하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들은 시·군청과 의회의 업무 협조로 음식점이나 위락시설을 허가하고 있지만 부여군은 시내 한복판이라 해도 유통상업지역에는 음식점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업하기 좋은 지자체 6위에 오른 강원 영월은 인허가 기간이 평균 12일로 전국에서 가장 빨랐다. 영월군은 빠른 행정처리로 올해 친환경화장품, 중국 수출용 TV, 쌀국수 등 수도권에 본사가 있는 3개 기업의 공장을 새로 유치했다.
TV업체 JLC의 김명섭 대표는 “공장 설립 승인과 건축 허가가 사흘 만에 나왔다”며 “박상규 군수가 두 번, 군청 담당자가 다섯 번 찾아와 애로사항을 묻고 해결해줬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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