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개 기업 이의신청…노벨리스는 행정소송 제기
탄소배출권 산다고 해도 가격급등 가능성 많아 부담
[ 정인설/박영태/심성미 기자 ]
산업계가 새해 벽두부터 정부의 탄소(온실가스) 배출권 규제를 둘러싸고 대혼란을 겪고 있다. 올해부터 2017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가량 줄여야 하는 배출권 규제 대상 525개 업체 중 100여곳이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늘려달라”고 환경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같은 이유로 알루미늄 제조업체인 노벨리스코리아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환경부는 “전체 할당량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맞서고 있는 만큼 산업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이의신청 결과에 따라 앞으로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화업계도 소송 불사
노벨리스코리아는 지난달 23일 “2015년부터 3년간 탄소 배출량을 35.6% 줄이라는 환경부 지침을 조정해달라”며 행정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고 환경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정지향 노벨리스코리아 상무는 “최근에 대규모로 설비를 신·증설한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환경부의 할당 지침을 따르면 신·증설한 설비는 돌리지도 못하고 기존 공장까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의 유화업체들도 환경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 예정된 대규모 투자를 고려하지 않고 2017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5.4% 줄이라는 환경부 지침은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업체들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67% 수준이어서 현재 탄소 배출량에서 1%도 줄이기 어렵다는 게 유화업계의 설명이다.
김기영 석유화학협회 환경안전본부장은 “유화업체들이 정부 목표를 이행하려면 공장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며 “이의신청 결과를 보고 회원사들과 상의해 행정소송을 낼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등 5개 항공사도 “3년간 탄소 배출을 14.3% 줄여야 한다는 감축 목표를 조정해달라”며 환경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항공사를 포함해 배출권 규제 대상인 23개 업종의 525개 업체 중 지난달 31일까지 환경부에 이의신청을 한 업체는 100곳이 넘는다. 이의신청 마감일은 2일이다.
◆과도한 목표로 전기요금 오를 수도
업체들이 반발하는 것은 환경부 목표치를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환경부는 2009년 저탄소 녹생성장을 추진하던 이명박 정부의 국정 지침에 따라 산업계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을 마련했다.
2012년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뒤 지난달 1일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업종별로 탄소 배출량을 평균 20.2% 줄이도록 하는 방안을 확정한 뒤 업체별로 통보했다.
감축 목표치가 가장 높은 발전 및 에너지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2017년까지 10억t 이상의 탄소를 할당해달라고 환경부에 신청했지만 27.2%를 감축하라고 요구받아서다. 당장 남동발전은 올해부터 환경부 지침에 따라 1500만t의 탄소를 줄여야 한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부족한 탄소 배출권은 시장에서 살 수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오는 12일부터 탄소배출권 거래가 허용되고 정부가 탄소배출권 기준가격을 t당 1만원으로 정해 추가 비용 부담이 작지 않아서다. 남동발전은 올해부터 연간 영업이익(2000억원) 중 75%인 1500억원을 배출권을 사오는 데 써야 한다. 배출권 규제가 전기요금 상승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배출권 가격은 1만원 이상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 시장 전체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부족해 탄소배출권을 사고 싶어하는 업체만 있고 매각 가능 업체는 전무해서다. 배출권 규제 대상 업체들이 2017년까지 부족하다고 보는 배출권은 4억2300만t인 데 비해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보유한 배출권은 1431만t에 불과하다. 감축 목표를 이행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지 못한 업체는 시장 가격의 세 배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내년 6월부터 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t당 3만원의 과징금만 낸다고 가정해도 산업계 전체로 2017년까지 12조7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김태윤 전경련 미래산업팀장은 “탄소 배출량이 한국보다 많은 미국이나 일본도 시행하지 않는 배출권 규제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설/박영태/심성미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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