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미국경제학회] "옛 소련도 油價 급락으로 몰락…푸틴의 '석유경제' 지속 어렵다"

입력 2015-01-05 22:30  

미국-러시아 新냉전인가

올해 러 성장률 -5% 전망…재정적자도 심각
러 경제, 中·日보다 작아…新냉전 성립 안 돼
국방예산도 美 5000억달러 vs 러 810억달러



[ 유창재 기자 ]
“석유 경제(petro economy)가 붕괴하기 직전인 현재의 러시아 모습은 2008년 주택시장 붕괴를 앞둔 미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석유 경제 붕괴의 독성은 미국의 금융위기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이다. 러시아는 석유라는 단일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정치경제학과 교수)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머지않아 막을 내릴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로 급락한 상황에서 푸틴 정권이 의존하는 이른바 석유 경제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 전문가이자 경제사학자인 스키델스키 교수는 4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의 ‘미국-러시아 신냉전’ 토론회에서 “올해 러시아 경제는 5% 역(逆)성장할 것”이라며 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옛 소련도 유가 급락에 몰락”

스키델스키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경제의 현대화에 실패한 것은 원유, 천연가스, 광물 수출에 의존하는 기존 석유 경제에 계속 기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한 돈으로 정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충당하기 때문에 소득세를 거의 내지 않은 중산층이 소비를 지속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원유 가격이 배럴당 50달러대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이런 시스템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게 스키델스키 교수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 정권의 운명이 유가 급락으로 막을 내린 사례는 많았다. 옛 소련이 대표적이다. 1980년 배럴당 117달러에 달하던 유가가 1986년 20달러대로 폭락하면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공산당 총서기의 개혁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가 힘을 얻었다. 하지만 소련은 저유가에 따른 경제 상황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1991년 붕괴됐다. 당시 공산당 해체를 주도하고 대통령에 오른 보리스 옐친도 1998년 유가가 배럴당 12.5달러까지 폭락하자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이듬해 정권을 내놓았다. 고유가가 가능케 한 이른바 ‘푸틴 붐’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게 스키델스키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작년과 올해 러시아 정부 예산은 배럴당 100달러의 유가를 예상하고 책정됐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뜻이다.

◆“러시아는 지는 해…신냉전 성립 안 돼”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등장한 ‘신냉전’이라는 단어는 성립조차 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대등한 라이벌이 군비 경쟁과 이념 경쟁을 벌였던 것을 말한다”며 “지금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월트 교수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경제 규모는 60조달러인 데 비해 러시아는 2조달러에 불과하다. 중국 일본은 물론 브라질보다도 규모가 작다. 국방 예산도 상대가 안 된다. 미국은 1년에 국방에 5000억달러를 쓰는 데 비해 러시아 국방 예산은 810억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을 제외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국방 예산이 러시아의 네 배에 달한다.

월트 교수는 또 “냉전 당시에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미국에 유입되면 자유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매카시즘)이 있었지만 지금 ‘푸티니즘’이 미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상황이 위험하고 서방과의 갈등을 해결할 묘책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냉전이라는 말은 ‘쇠락하는 파워’인 러시아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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