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영국 대사관의 度 넘은 '횡포'

입력 2015-01-07 20:42   수정 2015-01-08 06:21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 강경민 기자 ] ‘덕수궁 돌담길이 130년 만에 전면 개방된다’는 본지 보도가 나간 직후인 지난 6일 서울시 관계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들은 “기사 내용은 맞지만 주한 영국 대사관이 한경 기사를 인터넷에서 내리지 않으면 돌담길 관련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털어놨다.

본지 보도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부터 사석에서 수차례 털어놓은 얘기를 기사화한 것이다. 대부분 언론사들이 본지 기사를 추종 보도할 정도로 반향이 컸다. 그럼에도 대사관 측이 서울시를 사실상 협박한 이유가 뭘까. 시 관계자는 “대사관이 덕수궁 돌담길을 무단 점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국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대사관 후문부터 정문까지 190m의 돌담길 구간은 그동안 시민들 출입이 통제됐다. 이 중 90m 구간은 합법적인 대사관 소유 부지다. 나머지 100m를 영국 대사관이 1959년부터 도로로 불법 점용하고 있다. 서울시와 관할구청인 중구청은 “대사관이 이 구간을 불법 점용하고 있다”며 관리권 반환을 요구해왔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대사관 측 강요에 못 이겨 자신들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해명자료를 이날 배포했다. 덕수궁 돌담길 회복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대사관이 점용한 100m 구간은 서울시와의 임대계약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불법 점용이 맞지만 향후 협상을 위해선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기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덕수궁 돌담길 전면 개방은 박 시장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대사관이 협상을 거부하면 개방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해명자료를 낸 것이다.

단절된 덕수궁 돌담길은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각축전에서 빚어진 아픈 역사의 상처다. 130여년이 흐른 지금도 영국 대사관의 행태는 당시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정이지만 한국 대사관이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 옆길을 가로막아 철문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발랐다면 이를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심정은 어떨까. 영국이 진정한 ‘신사의 나라’라면 협상 중단이라는 으름장을 놓기 앞서 돌담길 전면 개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서울시와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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