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 신석기 혁명, 인간이 농사를 짓다

입력 2015-01-09 17:39  

EBS 최경석 쌤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 (2)

(1) 한반도에 인간이 살기 시작하다
(3) 고조선은 살아 있다
(4) 하늘과 인간 연결해 주는 솟대 신앙
(5) 고구려, 동아시아의 으로 발돋움하다
(6) 한반도 남쪽으로 눈을 돌린 장수왕…



완연한 겨울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김치는 땅에 묻은 장독에서 꺼낸 것이 제맛이지요. 요즘은 이를 응용한 김치냉장고가 대세지만 말입니다. 장독하면 플라스틱 용기가 난무하는 지금도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진흙(또는 질흙)으로 빚은 그릇이지요. ‘질그릇’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이고요. 우리는 이런 장독과 같은 질그릇을 수천년 전부터 사용하였습니다. 언제부터 이 질그릇을 사용하였을까요? 놀랍게도 신석기 시대부터랍니다.

약 1만년 전 드디어 빙하기가 끝납니다. 그리고 따뜻한 기후로 서해는 바닷물로 넘쳤으며 일본은 더 이상 대륙의 끝자락이 아닌, 말 그대로 섬들로 이루어진 열도가 됩니다. 따뜻해진 만큼 이제 한반도와 그 주변의 인류는 더 이상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지요. 정착 생활을 시작합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구석기 시대에는 없던 새로운 발명품, 토기가 등장합니다. 위에선 질그릇이라고 하더니 이번엔 토기라고요? 네, 교과서에선 띠모양의 흙을 덧붙였기 때문에 덧무늬토기, 밑이 뾰족하고 몸체에 빗살무늬가 새겨져 있어 빗살무늬토기라고 부르는데요. 미술사학계에서는 우리 도자기를 연구하며 일본식 번역어인 토기 대신 질그릇을 쓰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답니다. 즉, 이 시기에 덧무늬질그릇, 빗살무늬질그릇 등이 등장합니다.

간석기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다

이 질그릇들은 물을 충분히 담을 정도는 안 되었습니다. 고려청자나 백자와 달리 물을 흡수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열매나 곡물을 담아두거나 조리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4~5살 아이만한 크기의 질그릇도 발견되어 이걸 들고 이동할 수는 없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거지요. 강가나 바닷가에 60cm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바닥을 평평하게 한 후 움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바닥 한가운데에 불을 피운 화덕을 마련하고 살았지요. 그렇다면 무얼 먹고 살았을까요? 오늘날 우리처럼 밥을 먹게 됩니다. 그것도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식구, 즉 씨족을 바탕으로 하여 부족을 이루고 같이 조밥이나 수수밥 아니면 쌀밥도 먹기 시작합니다.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는 탄화된 조가 발견되었고, 심지어 일산과 김포 늪지대에서는 볍씨가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밭농사는 물론 벼농사도 일부 가능했던 것이지요. 아직 수능에서는 벼농사의 시작을 청동기 시대로 보고 출제하지만, 학계의 조사에 따르면 이렇듯 이 땅에서 매우 이른 시기부터 벼농사가 이루어졌지요. 즉, 인류사의 첫 번째 혁명이라 불리는 ‘신석기 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농사를 통해 정착은 물론 엄청난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붙인 명칭입니다.

한반도에선 채집·사냥도 이뤄지다

단, 신석기 시대 처음부터 농사를 지은 건 아닙니다. 이 시기가 무려 7000년 정도인데 딱 잘라 ‘신석기 시대=농업의 시작’이라고 도식화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란 물 흐르듯 준비 과정과 과도기가 있습니다. 역사를 암기하듯 딱딱 잘라 깍둑썰기 하듯 나누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에서는 여전히 채집과 사냥이 이루어졌습니다. 육지에서는 사슴이나 멧돼지를, 바다에서는 바다의 우유라는 굴이나 조개류 그리고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바다에서는 상어도 참 많이 잡아 먹어 그 뼈가 지금껏 남아있기도 해요. 그래서일까요? 빗살무늬질그릇 표면에 새겨진 무늬를 기본적으로 물결 모양 또는 물고기뼈 모양으로 보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렇게 신석기인들은 당장 농사를 짓기보다는 강가나 바닷가에 정착하여 조개나 상어와 참치, 돔과 같은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하였습니다. 조개는 참 많이 캐 먹어서 아예 쓰레기장이 생길 정도입니다. 패총 또는 조개더미라고 불리는데, 부산 동삼동의 이 조개더미 속에는 무려 40여종의 조개껍질과 함께 질그릇 파편이 발견되기도 하여 정말 쓰레기장으로 쓰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참에 여러분은 당연히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야 하는데요. 정착과 농경 그리고 질그릇이 등장하는데 왜 이 시기를 신석기 시대라고 부를까요. 그것은 이전 시기에 ‘뗀석기’를 사용하였다면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돌을 가는, 그래서 ‘간석기’가 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돌을 갈아서 더 정교하고 다양하게 사용한 것이지요. 뗀석기부터 인간의 창의적인 도구 제작이 시작되었는데, 한 단계 더 발전한 시기입니다. 돌화살로 날쌘 사슴도 잡고, 돌보습 돌괭이로 농사를 지으며 돌낫이나 돌칼로 수확을 한 것입니다. 돌그물로는 물고기도 잡았지요. 이제야 여러분은 이 시기를 왜 신석기 시대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갈 것입니다. 시대를 이해하는 눈, 그것이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 조건입니다.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은 신석기인들

점선띠 모양과 지그재그의 무늬, 빗금무늬가 몸체에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빗살무늬질그릇은 화덕에 세워진 채 출토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만들어 먹었을까요? 흥미롭게도 도토리묵을 만들었습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참나무가 많이 자라 도토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어요. 동해안에 위치한 양오산리, 한강 유역의 암사동, 하남 미사리 유적 등에서 이 도토리가 출토됩니다. 그런데 도토리는 타닌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떫은 맛이 심해 날로 먹기 힘들었습니다. 머리가 좋았던 신석기인들은 이를 제거하기 위해 껍데기를 깐 도토리를 1~2일 정도 바닷가 구덩이에 담아 두거나 질그릇에 물을 채워 담아 두었습니다. 떫은 맛이 사라지면 이제 신석기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간석기 중 갈돌과 갈판으로 도토리를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그 가루를 마대자루나 질그릇에 넣고 물에 며칠 동안 담가 놓거나 불로 가열하여 익혀 묵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여러분도 말랑말랑하고 쫀득한 도토리묵을 먹게 된다면 처음으로 이를 만들어 먹은 신석기인들을 한 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배문고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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