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학점 거품' 해소 주저하는 대학들

입력 2015-01-11 20:35   수정 2015-01-12 05:45

오형주 지식사회부 기자 ohj@hankyung.com


[ 오형주 기자 ] 중앙대가 내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F학점을 받은 과목에 한해 재학 중 3회까지만 재수강을 허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본지 보도가 나가자 대학가에선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일부 중앙대생들은 “낮은 학점으로 취업 등에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하는 예비 고3들이 우리 학교 입학을 꺼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저학년 때 공부를 게을리해 낮은 학점을 받았다가 고학년이 되면 재수강으로 학점을 ‘갈아엎는’ 한국 대학의 고질적 문제를 이번에 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학생은 “지금은 재수강하는 고학년과 함께 수업을 듣는 저학년들이 학점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며 “재수강을 금지하면 학년별로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강의를 듣게 돼 경쟁 여건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수강을 통해 저학년 때 받은 낮은 학점을 높은 학점으로 바꾸는 ‘성적표 세탁’은 한국 대학에서만 두드러진 현상이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재수강으로 평점을 올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 하버드대의 경우 재수강해 새로 받은 학점은 평점에 반영할 수 없다. 성적표에는 재수강으로 받은 학점이 최초에 받은 학점 옆에 괄호로 따로 표기될 뿐이다.

한국 대학의 재수강 제도는 서울대가 1992년 D학점 이하로 묶여 있던 재수강 자격 요건을 완화한 뒤 거의 모든 대학에서 허용돼 왔다. 20여년간 계속된 ‘학점 거품’은 대학 내에선 전반적인 학력 저하로 이어졌고, 채용 시장에선 학점에 따른 변별력이 사라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기업 채용 담당자들이 “학점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한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대학가에 만연한 학점 거품을 해소하기 어렵다. 대학들이 공동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지난 8일 열린 전국대학교무처장협의회에선 재수강 제도 개선이 안건으로 다뤄졌지만 대부분 대학들이 학생 반발을 의식해 시행에 주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대학이 바꾸지 못한다면 기업들이 나서야 한다. 학점 거품이 심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의 학점을 채용과정에서 평가하면 대학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형주 지식사회부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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