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어려울 때 增稅는 역효과
재정정책의 묘수가 필요한 시기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
얼마 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의 마지막 날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를 주제로 한 패널 세션에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거시경제 분석을 위해 보통 매우 복잡한 경제모형이 동원되지만, 가끔은 아주 간단한 모형이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면서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정책처방을 제시했다.
서머스 교수에 따르면 현재 거시경제상황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하기에 아주 유리한 상황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지속적으로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행하다 보니 시장에서는 금리가 제로가 되면서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는 ‘유동성 함정’이 나타났고, 이 상황이 더욱 심화되다 보니 화폐시장의 균형에 이상이 생기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정부지출을 늘리면 화폐시장 균형을 위해 금리가 상승하게 되는데 이런 금리상승은 민간투자의 위축을 가져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부지출이 민간투자를 줄여버리는 소위 ‘구축효과’다. 그런데 최근 상황에서는 재정지출을 확대해도 금리가 거의 변하지 않거나 약간 하락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재정지출 확대가 민간투자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혹은 거꾸로 민간투자를 유도하기까지 하면서 경기부양 효과가 커진다는 것이다. 양적 완화를 통한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행하다 보니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국면이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한편 동일한 세션에서 알레시나 하버드대 교수는 유럽의 재정조정에 대한 분석결과를 제시하면서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을 줄이거나(지출 감소), 세금을 늘리는(증세) 정책이 필요한데 이 두 가지 정책의 효과가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두 가지 정책 중 증세의 영향은 매우 부정적이다. 주로 지출 조정에 의존한 아일랜드와 영국은 좋은 결과를 얻은 반면 증세를 추구한 이탈리아는 매우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우리 경제 일각에서는 ‘필요하면 세금 더 걷으면 되지’ 하는 식으로 증세를 쉽게 여기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증세는 맡겨놓은 돈을 찾아 쓰는 것이 아니다. 민간이 써야할 돈을 정부가 가져다 쓰는 정책이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걷으면 민간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들지만 정부지출을 늘릴 수 있으니 중립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이런 중립성이 깨질 수 있다.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충격을 받은 민간 경제주체들이 지출을 크게 줄여버리면 증세의 중립성이 깨지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1929년 대공황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던 1937년, 루스벨트 정부는 증세를 통해 재정건전화를 시도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어렵게 회복 중이던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져 버렸다. 최근 일본의 경우도 소비세 증세가 경제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증세는 중립적이기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강할 수 있다는 점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이상의 논의들은 우리 경제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이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인해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재정지출 증대의 효과가 상당 부분 극대화될 수 있다. 특히 세월호 사태 이후 노후된 인프라에 대한 교체수요가 커지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재정지출 확대와 국민 안전성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효과를 거둘 필요가 있다. 둘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증세정책은 그 효과가 부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일본과 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에 대한 다양한 검토와 논의를 통해 새해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딛고 순항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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