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로 변한 수도권 규제] 제일약품, 30년 된 공장 신축허가에 6년…면적은 1㎡도 못늘려

입력 2015-01-12 20:44   수정 2015-01-13 04:00

(2) 기업 투자 막는 6만㎡·1000㎡의 덫
규제 벽 절감 용인 백암공장

신·증축용 부지 매입했지만 얽히고 설킨 규제에 6년 '허송'
관청 제출 서류만 5000여장
"규모 더 못늘려 아쉽지만 규제 풀리면 꼭 투자 확대"



[ 정인설 기자 ]
국내 제약업계 7위권인 제일약품이 지난 6년간 수도권 규제에 부딪힌 스토리는 많은 기업인의 한숨을 자아낸다.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 노후 공장을 리모델링하는 단계에 진입했지만 공장 면적은 단 1㎡도 늘리지 못했다.

○철벽같은 면적 규제

2005년 3월 제일약품은 한국화이자제약 부사장 출신인 성석제 사장을 신임 대표로 영입했다. 성 사장은 경기 용인시에 자리잡고 있는 백암공장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시설은 낡아빠졌고 근로자들의 작업환경은 너무 부실했다. 사무실과 창고를 추가로 지을 부지도 없었다. 직원들은 “1985년 공장 설립 이후 한 번도 개·보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 사장은 공장 신·증축을 결심했다. 성장을 위해서라도 공장 규모를 늘려야 했다. 이를 위해 기존 부지(3만5000㎡) 옆에 새로운 부지 3만7000여㎡를 매입했다.

하지만 새로 산 땅이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 도시계획시설에 속해 산업단지로 지정받기 전까지는 제조시설을 지을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땅과 새로 구입한 땅을 합하면 전체 면적도 7만2000㎡에 달했다. 용인 같은 수도권의 자연보전권역에 속한 공장 용지는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에 따라 6만㎡를 넘지 못하게 돼 있다. 제일약품은 결국 신·증축을 포기했다.

○국토교통부 지침도 ‘발목’

비수도권으로의 이전도 검토했다. 같은 제약업체인 유한양행 녹십자 등이 충북으로 옮겨 세제 혜택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하지만 별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경쟁사들처럼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 있는 공장이 지방으로 가면 법인세를 5년간 100% 면제받고 그 이후로도 2년간 50% 법인세를 감면받지만 자연보전권역에 있는 공장은 예외였다.

그 상태로 몇 년이 지나 2011년 5월, 용인시에서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공장 전체 부지를 미니 산업단지로 지정받으면 새로 매입한 땅에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성 사장은 “상심에 빠져 있던 중 시청 공무원들이 기업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당장 신공장 건설에 나섰지만 이번엔 상반된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6만㎡ 이하 부지만 공업용지로 조성할 수 있다는 법에 따라 새로 편입한 부지 중 2만4000㎡만 산업용지로 인가를 받으려 했더니 국토부의 지침과 맞지 않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진 것. 알고 보니 국토부가 2011년 ‘산업단지에 새로 편입되는 부지가 기존 공장부지보다 커야 한다’는 지침을 세웠던 것. 중소기업이 미니 산업단지로 지정받아 단번에 공장 규모를 키우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당시 경기도나 이천시 공무원들조차 이런 규정을 몰랐다. 이찬권 제일약품 이사는 “지방 공무원도 모를 정도로 수도권 규제는 얽히고설켜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증설한도도 소진

제일약품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서 국토부를 설득한 끝에 국토부가 지난해 1월 이 지침을 바꿨다. 그리고 제일약품은 6개월 뒤에 미니 산업단지로 최종 허가를 받았다. 공장을 새로 지으려고 시작한 지 6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동안 이천시, 경기도, 국토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에 제출한 인허가 서류만 5000장이 넘었다.

어렵사리 새 공장을 짓게 됐지만 공장면적은 하나도 늘어나지 않았다. 자연보전권역에 있는 대기업은 최초 제조시설 면적에서 1000㎡까지만 증설할 수 있다는 산집법 때문이었다. 제일약품은 이미 2012년에 산집법이 허용하는 증설한도를 다 소진했다.

결국 30년 된 아파트를 재건축하면서 한 평도 늘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꼴이 돼버렸다. 이 이사는 “이 정도 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큰 규모의 공장을 세울 수 없게 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며 “언젠가 규제가 풀리면 대규모 증설 투자를 통해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하고 일자리도 많이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 1000㎡

자연보전권역에 있는 대기업은 1000㎡ 이하까지 신·증설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자연보전권역 내 공업지역에서 3000㎡까지 신·증설할 수 있으며 자연보전권역 내 기타지역에선 1000㎡까지 허용된다.

용인=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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