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쟁점 '고정성' 大法 기준 그대로 적용
임금체계 개편 급물살…노조 항소가 변수
[ 정인설 기자 ]
서울중앙지방법원이 16일 현대자동차 통상임금 판결에서 사실상 현대차 손을 들어주면서 최대 1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던 회사 측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 또 2013년 말에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명확해진 통상임금 기준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유사소송이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이 밖에 노사 간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통상임금에 관한 입법 추진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산업계는 작년 10월 부산지법이 르노삼성자동차 소송에서 ‘사측이 2개월마다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중도 퇴직자에게 지급하지 않았지만, 고정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비상이 걸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원칙이 무너지면서 줄소송이 이어질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후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정기상여금 요건을 어디까지 봐야 할 것인가를 두고 각 산업 현장에서 혼란을 겪어왔다.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 요건의 하나인 고정성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게 됐고 산업체 노사는 대법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대로 통상임금 재조정을 가속화할 수 있게 됐다. 또 현대차가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를 통해 임금체계를 개편하면 다른 기업도 이를 반영해 임금체계 개편에 나설 전망이다.
현대차가 이번 판결로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은 130억원 정도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현대차가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과거 3년치(2010~2012년) 통상임금 소급분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서다. 법원은 현대차에서 소급분을 입증할 수 있는 옛 현대차써비스 정비직 인원에 대해서만 소급해주라고 판단했다. 옛 현대차써비스 직원들은 1998년 현대차와 합병한 이후에도 현대차와 다른 별도 임금 체계를 적용받았다. 일부 정비직 직원들이 소급받을 수 있는 상여금 범위도 시간외수당 같은 연장수당으로 한정했다.
현대차는 과거 통상임금 소급분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향후 노사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현대차 노사는 오는 3월 말까지 ‘임금 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임금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다만 이번 소송에 불복해 항소할 방침인 노조 움직임이 변수로 거론된다.
이번 소송 결과는 일단 현대차에만 해당하지만 산업계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현대차가 조합원만 4만8000명을 거느린 국내 최대 단일 사업장인 데다 한국 노사관계에서 현대차가 갖는 상징성이 커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싸고 노사 간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는 업체들도 현대차 판결을 준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통상임금 범위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업체들도 대법원이 2013년 12월 판결한 취지대로 노사합의를 이루는 데 속도를 붙일 수 있게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3일 매출 상위 300대 기업 중 100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6%가 통상임금 범위를 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철행 전경련 고용노사팀장은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의 핵심 쟁점인 고정성 부분을 대법원 판결대로 재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통상임금에 대한 노사정위 합의와 입법화 움직임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총 관계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 원칙을 중시하는 쪽으로 하급 법원 판결이 나와야 산업 현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고정성
상여금이나 수당이 통상임금이 되려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가운데 고정성은 ‘15일 이상 근무’ 등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일정 근무에 대한 대가를 확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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