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 과속…어린이집 난립하는데 3년에 한번 '1일 점검'

입력 2015-01-18 21:53   수정 2015-01-19 03:46

'어린이집 폭행' 부른 4대 독소

"無감독·無책임·뒷북대책…세월호 판박이"



[ 고은이 기자 ]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어린이집 폭행사태 이면엔 보육시설 공급 구조와 보육료 지원체계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고 인정했다. 5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 김모씨는 “어린이집 폭행사건을 보니 끔찍했던 세월호 사고가 겹친다”고 했다. 당국의 사전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고, 안전을 확보했어야 할 책임자가 오히려 피해를 준 데다, 사건 이후 급조한 정부 대책이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무상에 밀린 質개선 … 만족도 0.02점

2008년 3만3400곳이던 전국 어린이집은 무상보육 대상이 소득하위 15%에서 50%까지 확대된 2009년엔 3만5500곳까지 늘었다. 0~2세와 5세 아동이 있는 모든 가정에 보육료 지원을 시작한 2012년 4만2500곳, 지난해엔 4만3700곳까지 급팽창했다. 5년간 1만곳이 증가한 것이다. 이 중 가정어린이집이 1만5500곳에서 2만3600곳으로 8000곳가량 급증했다.

어린이집 이용률이 70%대까지 뛰었기 때문이다. 시설에 다니는 아동 수는 2009년 117만명에서 149만명으로 늘어났다. 무상보육 실시 이후 시설보육이 필요없는 부모들까지 보육료 권리를 챙기면서다. 하지만 정부가 국공립 어린이집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선 어린이집의 설치 자격요건을 느슨하게 운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육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개선하는 투자는 저조했다. 보육인프라 구축엔 전체 보육예산의 0.6%, 평가 인증엔 0.2%밖에 쓰지 못했다. 보육료 지원에 전체 보육예산의 66%를 쏟아부은 것과 대비된다. 보육료 지원 대상이 빠르게 늘어나다 보니 서비스 질 관리에 쓸 여분의 예산이 없었던 것이다. 막대한 보육예산 증가에도 학부모의 어린이집 만족도는 2009년에서 2012년 사이 5점 만점에 0.02점 증가하는 데 그쳤다.


(2) 보육료 상한제 … 양질의 서비스 차단

지금은 어느 어린이집이든 정부에서 정해진 금액 이상으로 아이 보육료를 받을 수 없다. 일종의 보육료 상한제다. 그러나 정부가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보육료 단가는 부모가 원하는 보육의 질을 담보하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보육료 지원 단가는 작년까지 4년째 동결돼 있다가 올해 3% 찔끔 올랐다. 복지부의 용역 결과 10~20%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기획재정부가 재정 사정을 문제로 인상폭을 깎았다. 더 높은 비용을 지급할 의사가 있는 학부모가 있어도 양질의 서비스를 공급할 통로가 원천 차단된 셈이다.

결국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생계형’ 어린이집이 난립한다. 일단 시장에 진입하면 정부 지원금이 나온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권리금은 수억원대에 거래되지만 진입 그 이후가 문제다. 원장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교사들에겐 최저임금을 주고 노후시설도 교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승객 운임 규제로 제값을 받기 힘든 승객 대신 가격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화물을 더 싣는 방식으로 영업을 해온 세월호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대다수 어린이집은 교사 1인당 아동 기준을 초과해 아동을 받고 있다. 보육료 지원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다. 정부는 교사 1인당 아동 수를 연령대별로 3, 5, 7, 15, 20명으로 제한하는 지침을 두고 있지만 어린이집의 요구에 따라 2~3명씩 초과보육을 허용하고 있다.

(3) 보육교사 부족 … 인터넷 자격증 남발

세월호 선장은 계약직이었다. 업무강도에 비해 보수도 박했다. 사람들은 책임의식을 요구했지만 선장은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 선장 못지않은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감이 필요한 보육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육교사 자격은 보육교사 양성원이나 학점은행제 등을 통해 관련 과목 17개의 학점만 이수하면 인터넷으로도 쉽게 딸 수 있다. 현장 경력 3년만 있으면 2급 보육교사가 1급으로 승급된다. 최근 인천 어린이집에서 문제가 된 보육교사도 1급이었다.

하루평균 근무시간 9.9시간에 월급은 131만원. 실태조사 결과 근무 중 한시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 응답자 가운데 40.6%에 달했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휴식한다는 경우도 33.6%나 됐다. 1시간 넘게 휴식한다는 사람은 전체의 2.2%에 불과했다. 보육교사의 평균 근무 연수가 4년5개월에 그친 이유다.

어린이집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교사 인력을 최소한만 확보하고, 그나마도 경력이 짧은 2·3급 교사 위주로 채용한다. 세월호가 계약직 선장을 기용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4) 관리부실 … 220명이 4만3천여곳 평가

문제의 인천 어린이집은 94.33점의 높은 점수로 지난해 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보육진흥원의 평가인증을 획득했다. 또 다른 폭행이 밝혀진 어린이집의 평가인증 점수도 95.36점으로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관리감독을 했다지만 유명무실했던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감독하고 감시한다고 했지만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지도 및 감독하는 한국해운조합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면서 사실상 관리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어린이집 평가인증은 인력 부족으로 3년에 하루,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2012년 한 해 동안 점검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어린이집이 5632개소(13.2%), 2010년부터 3년간 한 번도 안 받은 곳은 635곳이었다. 그것도 현장 관찰자 220여명이 전국 4만3770곳을 점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증평가 기준도 아동학대 예방이나 보육교사 자질 등에 관한 항목은 거의 없고 회계 등 행정 절차나 시설 점검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뒷북 행정도 세월호와 ‘닮은꼴’이다. 해수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연안여객선에 블랙박스 탑재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도 어린이집 폭행 사건 이후 CCTV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어린이집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똑같은 대책이 나왔다.

세종=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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