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區' 만들어 과태료·복지서비스 등 위임
구청장들 "區 없애려는 정부 노림수" 반발
[ 강경민 기자 ]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시행된 이래 각 구청이 갖고 있던 인허가 권한 등의 업무가 일선 동(洞)으로 대폭 이관된다. 기존 인허가 업무를 맡았던 구청 인력들도 동으로 대거 이동한다. 구(區)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현장 밀착 행정서비스를 위해 동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구청 기능 축소해 미니구
행정자치부는 21일 업무보고에서 올해부터 기존 읍·면·동보다 행정·예산 운영상의 자율권을 대폭 부여하는 ‘책임읍면동제’와 기초행정 단위인 동을 2~3개 묶는 ‘대동’(大洞)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책임읍면동제는 지역별 다양한 행정수요를 읍·면·동 현장에서 책임있게 해결하는 새로운 지방자치 모델”이라며 “기존 시·군·구의 사무 중 주민밀착 기능을 대폭 읍·면·동으로 이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책임읍면동제는 인구 7만명 이상의 읍·면·동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구청의 권한을 갖는 ‘미니구’를 대폭 늘리겠다는 게 행자부의 설명이다.
구청에서 동으로 이관되는 인허가 권한은 도로 및 녹지 점용, 광고물 허가 및 과태료 부과 등이다. 인허가 권한뿐 아니라 복지 서비스, 폐기물 및 주차단속, 부동산 거래신고 조사 등의 권한도 대폭 위임된다. 각 동장에게 일정 규모의 포괄적 재량 사업비를 주는 방안도 추진한다. 구가 편성한 예산 항목과 별도로 동장들이 임의로 예산을 활용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행자부는 이를 위해 유능한 공무원을 일선 동에 배치하고, 동장들에게 행정·예산 운영 자율권을 주는 대신 성과에 책임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행자부는 우선 선거를 통해 단체장을 뽑지 않은 도 산하 행정구를 대상으로 올해부터 책임읍면동제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대상 지역은 경기 시흥, 부천, 강원 원주 등 세 곳이다. 내년부터는 서울 등 광역시 산하 자치구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2~3개 동을 하나로 묶는 대동 제도도 시행된다. ‘시 본청-일반구-읍면동’ 구조에 따른 비효율 해소를 위해 인구가 적은 2~3개 동을 묶어 행정서비스를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주민 감소에도 불구하고 유지돼온 2~3개 면사무소를 통합해 1개는 행정면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면사무소는 복지서비스 제공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지방자치 무력화 노림수”
일부 구청장들은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무력화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의 A구청장은 “구청장의 권한을 약화시켜 사실상 구를 폐지하겠다는 정책”이라며 “정부가 지방정부를 무력화해 중앙집권을 강화하겠다는 노림수”라고 주장했다.
책임읍면동제 시행에 따라 지방행정이 사실상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시행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B구청장은 “민선 지방자치 실시 이전엔 자치구의 인허가 권한이나 단속 업무 등을 모두 일선 동에서 담당했다”며 “정부가 지방자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청장이 갖고 있던 인허가권과 예산 편성 권한을 각 동장이 나눠 갖게 되면서 동장의 권한 남용 및 부패 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역 사정에 밝은 동장이 지역 토착세력과 결합해 금품이 오가고, 인허가권을 남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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