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자영업자 부담 하나도 안줄어
'꼼수 증세' 논란 우려…발표 하루前 '포기'
[ 고은이 기자 ]
28일 정부가 돌연 폐기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은 지난 2년간 수십 차례 전문가 회의와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마련된 것이다. 제도에 무임승차 중인 고소득 가입자의 건보료를 늘려 저소득 자영업자 등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두고 고소득 가입자의 반발이 두려워 개편을 포기해 과중한 건보료 부담에 시달리는 취약계층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45만가구가 그렇게 두려웠나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연말정산 파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지금 (개편안을) 공개했다간 엄청난 역풍을 맞았을 것”이라고 논의 중단 배경을 설명했다.
개편안에서는 저소득 지역가입자 부담이 줄지만 월급 외 추가소득이 있는 직장인의 건보료는 오른다. 수천만원의 소득이 있어도 직장인의 피부양자라는 이유로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피부양자의 부담도 늘어난다. 현재 무임승차하고 있는 가입자에게 부담을 지우 ?방향이니 만큼 이번 개편안이 최근 연말정산 사태의 연장선에서 ‘꼼수 증세’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농후했다는 것이다.
개편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역가입자 550만가구가 부담해야 할 건보료는 줄어든다. 연소득 500만원 이하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산정할 때 쓰였던 가입자의 나이, 자동차 등 소득평가 기준도 폐지된다. 대신 정액의 최저보험료(1만6480원)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동시에 월급 외 연 2000만원 이상 추가소득이 있는 직장인 26만3000가구는 월평균 19만5000원의 건보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던 무임승차자 중에서도 2000만원 이상의 총소득이 있는 19만3000명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월평균 13만원가량의 건보료를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 가입자 전체적으로 보면 건보료가 오르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이 10배 이상 많다. 문제는 당장 건보료를 더 내야 하는 45만여가구가량의 불만이 터져나올 게 자명하다는 것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전날 “이번 개편안은 사실 제도의 합리성을 높이자는 것인데 누가 문제를 삼기 시작하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며 “몇 년간 공들여 해온 작품을 이번에 놓치면 몇 년은 그냥 흘러갈 것 같다”고 고민을 토로한 후 하루 만에 개편안 발표를 접은 이유다.
○내년엔 총선 등으로 더 어려워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포기함에 따라 현행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과중한 부담을 지고 있는 저소득 지역가입자 부담은 계속 이어지게 될 전망이다. 문 장관은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자동차와 재산에 과다하게 건보료를 매기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로 개선 대책을 강구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이 경우 건보료가 내리는 사람은 있는데 오르는 사람은 없어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내년엔 총선이 예정돼 있어 건보료 개편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도 많다.
기획단 회의에 참여했던 김진현 서울대 교수는 “근거 없이 과중한 건보료를 내고 있던 지역가입자를 구제하는 것이 더 시급한데도 일부 계층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논의를 중단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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