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미, 중국 잉어, 미국 연어, 프랑스 넙치, 덴마크 대구…. 어느 나라든 ‘국민 생선’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건 조기다. 그 중 최고는 황석어라고도 불리는 참조기다. 이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게 굴비,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해풍에 말린 걸 영광굴비라고 한다. 제삿상에 필수요 명절 선물로도 인기다.
조기는 제주 서남쪽과 중국 상하이 동쪽에서 월동하고 2월 추자도를 지나 3~4월 영광 법성포의 칠산 바다, 5월 연평도, 6월 평북 대화도 근처까지 이동한다. 이 중 곡우(4월20일) 전후에 칠산 바다와 연평도에서 잡은 알배기 참조기를 말린 게 최상품이다. 이 무렵 산란 직전의 조기를 ‘곡우살 조기’ ‘오사리 조기’라 하는데 이걸 말린 특상품이 ‘곡우살 굴비’ ‘오가재비 굴비’다.
법성포 앞 칠산 바다에는 일곱 개의 작은 섬이 있어 칠산 바다 혹은 칠뫼 바다라고 한다. 이 지방 뱃노래에 ‘돈 실로 가자 돈 실로 가자 칠산 바다에 돈 실로 가자’는 가락이 있을 정도로 돈이 넘쳤다. 법성포에서 말린 굴비는 천일염으로 켜켜이 재는 방법이어서 소금물에 담갔다 말리는 다른 지역 것과는 다르다. 서해 하늬바람(북서풍) 등 지리·기후 덕분에 깊은 맛이 더하다.
그러나 법성포에서는 요즘 참조기가 거의 잡히지 않는다. 추자도 등 남쪽에서 가져와 이곳에서 말린다. 조기들의 움직임도 달라져서 추자도 위로 북상하는 양이 확 줄었다. 추자도 남획설과 조기떼의 생존본능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요즘 참조기 주산지는 제주다. 영광 일대의 어획량은 지난해보다 50% 줄어들었다. 반면 올 1월 제주수협의 위탁 판매량은 305t으로 목포수협(311t)에 육박했다. 제주 어선들이 대형화하고 먼바다에서 조기를 잡아오는 것도 한 원인이다. 제주수협에서 파는 참조기값은 목포산보다 10% 싼 ㎏당 1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대형마트에서도 제주산이 인기다. 전체 굴비 세트 중 제주산 비중이 지난해 설에 19%, 추석에는 24%로 높아졌다고 한다.
임금님 수랏상에 올랐던 영광 굴비의 굴욕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명성이 완전히 바랜 건 아니다. 영광 사람들은 칠산 조기나 제주 조기나 비슷한데 어디서 말리느냐에 따라 굴비 맛이 좌우된다고 말한다. 영광군도 굴비산업특구 기간을 연장하고 진품 인증태그 보급을 늘리는 등 명성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래저래 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법성포 굴비든 제주 굴비든 식탁에 오르면 그게 곧 수랏상 아닌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 坪?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