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작렬' 진상 고객에 새카맣게 썩는 속
직장인 분노 유발자들 '욱' 하면 '훅' 간다
회식자리서 술김에 쏟아낸 부장 욕
실적 아무리 올려도 만회가 안 되네
[ 김은정 기자 ]
‘삼단봉 사건, 땅콩 회항, 백화점 갑질 모녀,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최근 사회적으로 국민의 공분(公憤)을 사는 사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의학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오랫동안 화가 쌓이면 잠재된 분노가 갑자기 말과 행동으로 격렬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분노 조절장애’다. 그러나 이런 일이 멀리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책임감 없는 후배,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동기, 하루걸러 한 번씩 회식하자는 상사 등…. 김과장 이대리들로부터 분노 유발자에 대해 들어봤다.
◆“내가 공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내로라하는 국내 대표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 대리는 수년째 매년 1~2월만 되면 여기저기서 지겹도록 “한턱 쏴”란 말을 듣는다. 이 대리가 다니는 회사가 모든 국민의 관 ?받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성과급 지급 여부와 지급 비율이 기사를 통해 거의 실시간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사업부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었다. 미혼일 때는 친구들에게 선심 쓰듯 술을 산 적이 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에 결혼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결혼하면서 빌린 대출금이 산더미다. 이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대출금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짠돌이처럼 굴지 말라’고 강요하는 친구들의 문자 메시지를 보면 당장 달려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 “밤낮 구분 없이 치열하게 일해서 받은 성과급인데 마치 공돈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을 보면 화가 확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트집’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결?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양모 대리는 최근 몸무게가 크게 불어 걱정이다. 새로 옮긴 부서의 상사 때문이다. 올드미스(자칭 골드미스)인 이 상사는 자신보다 어리거나 외모에 신경 쓰는 여자 후배들에게 유난히 엄격하다. 점심식사 때 메뉴를 정할 때도 “메뉴 고르는 것 보니 몸매 관리하는구나”라는 식으로 비꼰다. 그뿐 아니다. 옷 입는 것부터 걸음걸이, 앉은 자세, 말투까지 트집을 안 잡는 게 없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인데도 자신이 원하는 단어를 보고서에 사용하지 않으면 불같이 짜증을 낸다. 양 대리는 상사의 ‘지적질’로 인한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몸무게를 재고는 기절할 뻔했어요. 화병에 몸무게, 이제는 제 성격까지 난폭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식품 업체 영업팀에 근무하는 구모 대리는 욱하는 성격을 참지 못해 ‘패가망신’ 직전에 몰렸다. 구 대리는 지난해 부진한 영업 실적 때문에 최근 소속 부장으로부터 크게 혼이 났다. 후배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큰소리로 꾸중을 들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구 대리였다. 마침 그날 저녁 부서 회식 자리가 있었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그때 감정이 되살아났고, 구 대리는 회식자리에서 부장에게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만 것. 구 대리는 다음날 자신이 저지른 ‘회식 테러’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내에서는 실적 부진에 ‘뒤끝 작렬’ 부장에게 찍혀 구 대리가 제대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평이 돌고 있다.
◆“사정 알 만한 사람이 더해”
대형 카드회사 콜센터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워킹맘’ 황모씨는 가입자들의 ‘꼴불견’ 항의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가 콜센터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내 한도가 왜 이것밖에 안 돼! 날 무시하는 거야?’ ‘그거 하나 확인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일을 그런 식으로 하니깐 전화 받는 일이나 하고 있지!’ 등이다. 기업들이 콜센터 직원을 괴롭히는 악성 소비자에게 강력하게 대응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콜센터는 소비자의 불만과 분노를 받아내는 ‘총알받이’ 역할을 하고 있다. “오히려 전· 痴?콜센터 직원이 ‘진상 고객’인 경우가 많아요. 자신이 받았거나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되돌려 주는 것이죠.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럴 땐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은 뒤 머뭇거리면 ‘너 잘 걸렸다’는 양 욕을 퍼붓는 식이라니까요.”
◆순간의 화를 참으면 3대가 편하다
중견 광고·마케팅 업체에 다니는 김모 팀장은 분노를 조절해 죽을 고비를 넘긴 케이스다. 그는 최근 몇 개 프로젝트가 겹치면서 피곤과 초조함,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했다. 거기에 사전 브리핑 때 담당 임원으로부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로 모욕을 당했다. 김 팀장은 순간 울컥했으나 가족들 생각에 화를 꿀꺽 참았다고 한다. “눈을 질끈 감고 길게 심호흡을 했어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걸로 마음을 풀었습니다.”
미디어 관련 업체에 다니는 오모 대리는 분노하는 상사를 대하는 자신만의 감정 조절 방법이 있다. 툭하면 집기를 집어 던질 정도로 불같이 화를 내는 상사 때문에 한때는 신경쇠약증에 걸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면 상대방을 투정부리는 네다섯 살 아이로 상상한다.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보잖아요. 분노하는 상사를 징징대면서 떼쓰는 아이로 상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오히려 상대방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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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분노 유발자들 '욱' 하면 '훅' 간다
회식자리서 술김에 쏟아낸 부장 욕
실적 아무리 올려도 만회가 안 되네
[ 김은정 기자 ]
‘삼단봉 사건, 땅콩 회항, 백화점 갑질 모녀,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최근 사회적으로 국민의 공분(公憤)을 사는 사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의학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오랫동안 화가 쌓이면 잠재된 분노가 갑자기 말과 행동으로 격렬하게 표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분노 조절장애’다. 그러나 이런 일이 멀리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책임감 없는 후배,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동기, 하루걸러 한 번씩 회식하자는 상사 등…. 김과장 이대리들로부터 분노 유발자에 대해 들어봤다.◆“내가 공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내로라하는 국내 대표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 대리는 수년째 매년 1~2월만 되면 여기저기서 지겹도록 “한턱 쏴”란 말을 듣는다. 이 대리가 다니는 회사가 모든 국민의 관 ?받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성과급 지급 여부와 지급 비율이 기사를 통해 거의 실시간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사업부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었다. 미혼일 때는 친구들에게 선심 쓰듯 술을 산 적이 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에 결혼한 뒤 상황이 달라졌다. 결혼하면서 빌린 대출금이 산더미다. 이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대출금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짠돌이처럼 굴지 말라’고 강요하는 친구들의 문자 메시지를 보면 당장 달려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 “밤낮 구분 없이 치열하게 일해서 받은 성과급인데 마치 공돈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을 보면 화가 확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트집’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결?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양모 대리는 최근 몸무게가 크게 불어 걱정이다. 새로 옮긴 부서의 상사 때문이다. 올드미스(자칭 골드미스)인 이 상사는 자신보다 어리거나 외모에 신경 쓰는 여자 후배들에게 유난히 엄격하다. 점심식사 때 메뉴를 정할 때도 “메뉴 고르는 것 보니 몸매 관리하는구나”라는 식으로 비꼰다. 그뿐 아니다. 옷 입는 것부터 걸음걸이, 앉은 자세, 말투까지 트집을 안 잡는 게 없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인데도 자신이 원하는 단어를 보고서에 사용하지 않으면 불같이 짜증을 낸다. 양 대리는 상사의 ‘지적질’로 인한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몸무게를 재고는 기절할 뻔했어요. 화병에 몸무게, 이제는 제 성격까지 난폭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식품 업체 영업팀에 근무하는 구모 대리는 욱하는 성격을 참지 못해 ‘패가망신’ 직전에 몰렸다. 구 대리는 지난해 부진한 영업 실적 때문에 최근 소속 부장으로부터 크게 혼이 났다. 후배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큰소리로 꾸중을 들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구 대리였다. 마침 그날 저녁 부서 회식 자리가 있었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그때 감정이 되살아났고, 구 대리는 회식자리에서 부장에게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만 것. 구 대리는 다음날 자신이 저지른 ‘회식 테러’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내에서는 실적 부진에 ‘뒤끝 작렬’ 부장에게 찍혀 구 대리가 제대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평이 돌고 있다.
◆“사정 알 만한 사람이 더해”
대형 카드회사 콜센터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워킹맘’ 황모씨는 가입자들의 ‘꼴불견’ 항의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가 콜센터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내 한도가 왜 이것밖에 안 돼! 날 무시하는 거야?’ ‘그거 하나 확인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일을 그런 식으로 하니깐 전화 받는 일이나 하고 있지!’ 등이다. 기업들이 콜센터 직원을 괴롭히는 악성 소비자에게 강력하게 대응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콜센터는 소비자의 불만과 분노를 받아내는 ‘총알받이’ 역할을 하고 있다. “오히려 전· 痴?콜센터 직원이 ‘진상 고객’인 경우가 많아요. 자신이 받았거나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되돌려 주는 것이죠.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럴 땐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은 뒤 머뭇거리면 ‘너 잘 걸렸다’는 양 욕을 퍼붓는 식이라니까요.”
◆순간의 화를 참으면 3대가 편하다
중견 광고·마케팅 업체에 다니는 김모 팀장은 분노를 조절해 죽을 고비를 넘긴 케이스다. 그는 최근 몇 개 프로젝트가 겹치면서 피곤과 초조함,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했다. 거기에 사전 브리핑 때 담당 임원으로부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로 모욕을 당했다. 김 팀장은 순간 울컥했으나 가족들 생각에 화를 꿀꺽 참았다고 한다. “눈을 질끈 감고 길게 심호흡을 했어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걸로 마음을 풀었습니다.”
미디어 관련 업체에 다니는 오모 대리는 분노하는 상사를 대하는 자신만의 감정 조절 방법이 있다. 툭하면 집기를 집어 던질 정도로 불같이 화를 내는 상사 때문에 한때는 신경쇠약증에 걸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면 상대방을 투정부리는 네다섯 살 아이로 상상한다.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보잖아요. 분노하는 상사를 징징대면서 떼쓰는 아이로 상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오히려 상대방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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