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성 기자의 IT's U
애플 작년 4분기 깜짝 실적…역대 분기 최대 매출·순이익
화면 마지노선 4인치 포기…6인치 대화면 모험 대성공
안드로이드 베껴서라도…
'잡스에 갇힌 정원' 열고 변신의 신호탄 쏘아올려
[ 김민성 기자 ]
냉정하리만치 침착하기로 유명한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분명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난달 27일 애플의 작년 4분기(10~12월) 실적 발표장은 ‘기록 경신’ 축포를 쏘는 잔칫집이었다. 분기 역대 최대 아이폰 판매(7450만대), 분기 최대 매출(746억달러), 분기 최대 순이익(180억달러) 등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온갖 업계 추정치를 뛰어넘은 ‘어닝 서프라이즈’. 쿡 CEO는 실적 발표에 귀를 고정한 전 세계 애널리스트들에게 당당히 말했다. “지난 3개월간 7450만대 아이폰을 팔았어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당 3만4000대씩 판 겁니다. 역사적 기록입니다. 경이로울 만큼 놀라워요.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지난해 9월19일 아이폰6 및 6플러스 공식 출시 이후 5개월 만의 실적 발표였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 전성기도 끝났다’고 냉소를 보내던 세상을 향해, 그리고 하늘에 잠들어 있는 잡스를 향해 쿡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스티브 잡스, 보고 있나요? 우리가 또 해냈어요.”
스티브 잡스와의 이별
6세대 아이폰에서 애플은 잡스가 고집한 화면 크기 마지노선인 4인치를 포기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화면이 3인치대로 작아야만 한손에 쥔 채 엄지로 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잡스 식 사용자 경험(UX)을 6년 만에 폐기했다. 2012년 아이폰5로 처음 화면을 키울 때도 4인치까지, 단 0.5인치만 늘렸던 애플이었다.
애플이 화면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는 동안 안드로이드 진영은 대화면 스마트폰으로 승승장구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안드로이드 진영은 작게는 4인치 후반에서 6인치까지 대화면 공세를 펼쳤고, 삼성전자는 애플을 제치고 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위 왕좌에 올라섰다.
애플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잡스 철학만 고수할 수는 없게 됐다. 지난해 처음 애플이 아이폰6 화면을 4.8인치로 키운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 비아냥은 커져갔다. 특히 애플이 안드로이드를 베끼기 시작했다는 지적은 뼈아팠다.
애플, 안드로이드 베끼다?
안드로이드 진영이 아이폰 디자인 특허를 무단 도용했다며 3년 넘게 세기의 특허전쟁을 벌여온 애플이었다. 이른바 아이오에스(iOS) 대 안드로이드 간 핵전쟁. 월트 아이작슨이 2011년 발간한 잡스 전기에는 잡스가 안드로이드와 법정싸움을 시작하면서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구글 ××들(you fxxking), 아이폰을 도둑질했어. 내 숨이 다할 때까지 애플이 가진 은행 잔액 마지막 1페니까지 털어 이기겠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잡스는 구글을 대도(大盜)라고 봤다. iOS와 아이폰 기술력을 무수히 훔쳐 안드로이드를 ‘출산’했다며 이를 갈았다.
그랬던 애플이 아이폰6부터 안드로이드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특히 숙적,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 시리즈로 일군 새로운 스마트폰 영역 ‘대화면’이었다. 이내 “아이폰 사용자는 잡스 철학을 포기한 애플을 등질 것” “대화면은 아이폰과 맞지 않는다” 등 우려가 들끓었다.
안드로이드 핵전쟁의 교훈
애플의 실적이 숫자만큼이나 중요한 건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점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 10대 중 8대가 안드로이드일 만큼 영향력이 큰 건 그만큼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애플도 깨달은 셈이다.
그간 애플은 바깥 모바일 생태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닫힌 정원(walled garden)’ 식 사고였다. 그러나 결국은 이를 탈피했다. 그게 비록 애플의 영원한 수호신 잡스의 철학이라 해도 말이다. 변화 이후 애플 제품에 대한 세계 수요는 역대 최고치다. 잡스 사후 실적 악화 의구심뿐 아니라 대화면 아이폰에 대한 우려 역시 기우에 불과했음을 증명했다.
만루 홈런을 친 아이폰6, 다음 타자는 애플워치·페이다. 애플워치는 애플이 惻璲?공들인 웨어러블(입는) 방식의 첫 제품, 페이는 전 세계 화이트컬러 계층이 가장 많이 쓰는 스마트폰 아이폰에서 구동하는 결제 핀테크(금융+기술)다. 애플의 건재함을 과시한 쿡 CEO가 반년 뒤 어떤 성적표를 공개할지 주목된다.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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