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보다 앞서 1990년대 중반부터 법원을 통한 회생 신청이 급증하자 2005년 ‘파산신청 오용방지 및 소비자보호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공적 제도 신청 전에 사적 신용상담을 의무화한 것이 핵심이다. 법원에 빚을 깎아달라고 신청하기 전 6개월 내에 사적 신용상담 사실증명서를 법무부에서 승인받아 제출해야 한다.
독일도 ‘사적 채무조정→공적 채무조정’을 순서대로 거쳐야 한다. 사적 채무조정을 통해 빚을 다 갚기 힘든 경우 채무 변제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인정받은 서류를 내야 한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영국은 사적 채무조정을 먼저 거칠 것을 의무화하지는 않았지만, 자율적 사전조정이 활발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적 채무조정프로그램의 운영 내용도 다르다. 한국에서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조정 가능한 채무는 위원회와 협약을 맺은 금융회사 빚에 한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법원에 가는 경우도 많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조정 가능 채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사적 프로그램을 이용해 빚을 깎을 수 있는 범위가 더 넓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조정 대상을 제한해 채무자들의 발걸음을 법원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은 법원에서 빚을 깎아 주더라도 반드시 일정 금액 이상을 갚도록 하고 있다. 총 채무액의 20%는 꼭 갚도록 한 최저변제액 제도를 뒀다. 한국은 소득 중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을 3~5년 정도 갚으면 나머지는 모두 탕감해 준다. 이는 채무자들이 법원으로 몰리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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