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실리콘밸리 쇼크'] "실험실서만 보던 레이저·3D프린터…미국 창업 대학생은 맘껏 쓰네요"

입력 2015-02-23 20:46   수정 2015-02-24 04:22

(1) IT샛별 쏟아내는 창업 인프라에 탄성

"차별·독불장군·평생직장·정부지원 없는
실리콘밸리에서 진짜 기업가 정신 배웠다"



[ 오형주 기자 ]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UC버클리의 창업지원 기관 ‘시트러스 인벤션 랩’에 들어선 서울대생들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이곳 학생들이 레이저 절단기, 3D프린터 등 각종 장비를 마음껏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던 한 학생은 “서울대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지만 특정 학과 수업에만 쓰이고, 상당수 학생은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했다.

실리콘밸리 내 기업과 대학을 둘러본 서울대생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배웠다고 말한다. 벤처 생태계에 지속적인 활력을 불어 넣는 멘토링과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실감했다.


○기업인들 “편한 길만 찾지 말라”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은 서울대생들에게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와 직접 부딪쳐야 한?rdquo;고 주문했다. 현지에서 벤처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윤필구 빅베이신캐피털 대표는 “의식적으로 자기를 불편한 곳에 위치시켜야 성장할 수 있다”며 편한 길만 선택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김범섭 퀄컴 부사장은 “연구원, 교수, 대기업 임원을 모두 경험해봤지만 창업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며 “미국에 휴일이 왜 이렇게 많냐고 불평할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2000년 KAIST 교수직을 던지고 나와 미국에서 휴대폰 칩 개발회사를 창업했다. 2006년엔 이 회사를 퀄컴에 5600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547억원)에 매각했다.

이곳 학생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스탠퍼드대 창업동아리인 ‘BASES’ 회장은 “실패에 대한 부담과 리스크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며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근본적인 차이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엔 △차별과 편견 △독불장군 △평생직장 △정부 지원 등 네 가지가 없다는 점도 확인했다. 박태영 씨(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4학년)는 “정부 지원 없이 세계적인 기업이 잇따라 나오는 실리콘밸리를 돌아보면서 ‘제로 투 원(zero to one·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의 원동력은 결국 기업가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멘토링·네트워크가 ‘성공DNA’

서울대 학생들은 공대 출신들의 위상과 역할에 새삼 놀랐다. 공대 졸업생들은 실리콘밸리에선 최고 인재로 대우받고 있었다. 정보기술(IT) 대기업 엔지니어의 초봉이 10만玭?약 1억1000만원)에 달할 정도다. 서울대생들은 방문하는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나중에 사업에 성공하려면 곁에 있는 공대생들을 잘 모시라”는 조언을 들어야 했다.

창업을 꿈꾸는 서울대생들을 무엇보다 매료시킨 점은 창업경험을 예비창업자에 전수하는 실리콘밸리의 멘토링 문화였다. 대부분 기업과 창업가들이 학생들을 스스럼없이 맞이하고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멘토링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창업 노하우가 전수되고 창업에 필요한 자금이 투자되고 있었다.

벤처 투자 유치를 위한 문턱도 높지 않았다.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권도형 씨는 “아무리 유명한 벤처캐피털이라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 만나볼 수 있다”고 했다.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장남으로 이곳에서 벤처캐피털 ‘포메이션8’을 경영하는 구본웅 대표는 “벤처 투자자가 스타트업을 먼저 찾아가 우리 돈을 써달라고 설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실리콘밸리를 돌아본 서울대생들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았던 시야가 크게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최고 대학인 서울대의 창업 환경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서울대의 학부생 진로의식 조사 결과 창업을 1순위로 희망한 비율은 2.1%에 불과했다. 남익현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기업가 센터를 통해 학생들이 마음 놓고 창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새너제이=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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