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그루브 룰' 적응 실패…쇼트게임 나빠져 긴 슬럼프
10차례 넘게 스윙 바꾼 '스윙교정 마니아'로 유명
[ 한은구 기자 ]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 왕립골프협회(R&A)는 2010년 아이언부터 웨지까지 그루브(클럽 페이스에 파인 홈) 깊이가 0.508㎜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정을 바꿨다. U자형이나 직각(박스)형의 그루브 제품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같은 ‘그루브 룰’ 변경으로 당시 정상급 선수였던 파드리그 해링턴(44·아일랜드)은 예상치 못한 직격탄을 맞았다.
종전의 박스형 그루브는 러프에서 탈출하거나 칩샷과 피치샷을 하기에 더 쉬웠다. 낮게 날아가도 스핀이 잘 먹혔다. 해링턴은 “새로운 그루브 룰로 인해 라운드당 평균 1타를 잃었다”며 “페어웨이와 그린 적중률이 높지 않은 내게는 어프로치샷에 용이했던 박스형 그루브가 잘 맞았다”고 털어놨다.
해링턴은 2007년과 2008년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한 데 이어 2008년 PGA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2년 사이에 3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그루브 룰 변경 이후 PGA투어나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하는 슬럼프를 겪었다. 세계 랭킹도 297위로 곤두박질쳤다.
회계사 출신으로 상금 등 수입에 대한 세금 계산도 직접 해온 해링턴은 스윙을 자주 교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스윙을 10차례나 바꿨다. 2013년에는 퍼터도 롱퍼터로 바꾸는 등 실험정신이 강하다.
해링턴이 7년간의 침묵을 깨고 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의 PGA내셔널 챔피언코스(파70·7158야드)에서 열린 혼다클래식(총상금 610만달러)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악천후와 일몰 등으로 이틀간 펼쳐진 4라운드에서 그는 이븐파를 기록, 최종합계 6언더파 274타로 대니얼 버거(미국)와 동타를 이뤄 연장전에 들어갔다. 1차 연장전에서 파로 비긴 해링턴은 17번홀(파3)로 이어진 2차 연장에서 파를 잡아 티샷을 물에 빠뜨린 버거를 따돌렸다. 투어 통산 6승째, 우승 상금은 109만8000달러(약 12억9000만원)다.
2005년 이 대회에서 PGA투어 첫 승을 올린 해링턴은 10년 만에 우승컵을 되찾았다. 다음달 열리는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출전권도 확보했고 세계랭킹도 82위까지 끌어올렸다.
해링턴에게 악천후는 오히려 득이 됐다. 전날 시작된 4라운드에서 해링턴은 7번홀까지 3타를 잃고 우승권에서 멀어지는 듯했으나 일몰로 경기가 중단돼 다음날 재기의 샷을 날릴 수 있었다. 11번홀부터 14번홀까지 4개홀 연속 버디를 잡아 패트릭 리드(미국)와 공동 선두가 됐다.
승부는 ‘베어 트랩(15~17번홀)’이라는 별명이 붙은 어려운 홀에서 갈렸다. 리드는 15번홀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해링턴은 16번홀(파4)에서 그린을 놓쳤지만 노련한 箸?纛湛막?파로 막아냈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인 17번홀(파3)에서 티샷이 오른쪽으로 휘면서 워터 해저드에 빠져버렸다. 해링턴은 더블보기를 적어내고 패색이 짙었지만 18번홀(파5)에서 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극적으로 아들뻘인 22세의 버거와 함께 연장전에 들어갔다. 해링턴은 연장 두 번째홀인 17번홀에서는 티샷을 홀 1m 옆에 붙여 승부를 결정지었다.
연장전에서 패한 버거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미국 테니스 대표팀을 지도한 제이 버거의 아들이다. 박성준(29)은 합계 3오버파 공동 31위, 양용은(43)은 합계 5오버파 공동 44위를 기록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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