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쌓기용 의원 입법
3~4쪽짜리 쪽지법안 난무
공청회는 요식행위일 뿐
[ 손성태 기자 ] 여야는 4일 전날 부결시킨 ‘영유아보육법’ 책임 공방을 벌였다. 이 법은 유치원 등에 폐쇄회로TV(CCTV)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것으로 여야가 ‘아동학대방지특별위원회’까지 꾸려 공을 들였지만 기권표가 속출하면서 입법에 실패했다. 본회의에서 인권 침해 문제가 집중 제기됐기 때문이다. ‘어린이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만에 법안을 만들어 인스턴트 식 졸속 입법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대 국회 들어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1만2588건(3월5일 현재)으로 집계됐다. 의원 1인당 평균 42건 발의했다. 의정활동을 법안 발의 건수로 평가하는 실적주의와 간편한 입법절차가 맞물리면서 입법 폭주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 때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10여개 잇달아 제출됐듯이 특정 사안이 생길 때마다 즉흥적 입법은 줄을 잇는다.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법안 하나 만드는 데 수개월씩 걸리고, 법안 제안 경위와 취지 등 참고자료만도 수백쪽에 달 求?데 비해 한국에서는 불과 3~4쪽 분량의 법안을 보도자료 내듯 발의한다”고 말했다.
공청회를 비롯한 심의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3일 국회에서 통과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은 2013년 8월 국회에 넘어왔지만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공청회를 단 한 번만 열었다. 법 적용 대상을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으로 확대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의 반대가 많았지만 정무위는 이를 무시하고 법안을 처리했다.
국회 관계자는 “공청회가 여론 수렴 목적보다는 입법 ‘명분 쌓기용’으로 전락해 입법 폭주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절차를 무시하는 입법 관행이 김영란법 위헌 논란을 빚은 한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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