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소 개조한 '자그마치' 제품 출시 행사장으로 각광
협력 가능한 제조업체 많고 다른 상권보다 임대료 싸
카페·공방·쇼룸 속속 입주
[ 김동현 기자 ]
지난달 24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낡은 외관의 대림창고 건물 앞에 한 미술작가의 전시회 포스터가 나붙었다. 오후 5시께가 되자 옛 공장지역 내 골목길을 연상시키는 허름한 길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림창고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관람하려는 이들이었다. 전시회 관계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옛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리모델링해 사진 촬영 스튜디오, 신제품 출시 행사장, 미술 전시회장 등으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래동 양평동 가산동 등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 제조업 지역인 성수동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오래된 빈 창고는 전시회 및 공연장으로, 수명을 다한 폐(廢)공장은 카페·스튜디오·공방 등으로 바뀌고 있다. 디자이너, 사진작가, 조형작가 등이 자신의 작품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제조업체가 많고 서울 강북 도심과 강남권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교통 여건이 예술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劇?甄?
◆폐공장에 들어선 카페·스튜디오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주변엔 1970년대부터 인쇄소, 철공소, 자동차 공업사, 수제화 업체 등이 자리를 잡았다. 한양대와 건국대 중간 지점이란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생산 공장이 많아 1980~1990년대를 거치면서도 개발의 뒤편에 놓여 있었다.
그랬던 성수동 일대에 변화의 바람이 분 건 2010년대 들어서다. 옛 공장을 활용한 카페와 스튜디오, 전시회장, 공방 등이 곳곳에 들어섰다. 성수이로 대로변에 있는 대림창고가 대표적이다. 연면적 1252㎡ 규모의 이 건물은 1970년대 초 정미소로 지어졌다. 1990년대부터 20여년 동안 공장 부자재 창고 등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4년 전부터 이 건물은 이름만 창고일 뿐 기능적으론 더 이상 창고가 아니다. 화보·CF·드라마 촬영장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콘서트, 패션쇼까지 열린다. 지난달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는 이곳에서 스포츠카 ‘올 뉴 머스탱’ 출시 행사를 열었다.
인근 ‘자그마치’ 카페 건물은 인쇄공장이었다. 작년 2월 문을 연 이 가게 앞에는 ‘디지털 라이팅 랩’(조명 연구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독특한 조명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평소엔 카페지만 구두·의류 등의 브랜드 출시 행사 장소로 쓰이거나 미술평론가 등의 강연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조명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정강화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이 카페 공동대표다.
주택가 곳곳에는 소규모 디자인 그룹과 건축가 그룹이 입주한 공방, 쇼룸 등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물건을 중간 유통과정 없이 판매하는 ‘보부상회’ 자리는 청바지 워싱 공장이었다.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으로 디자인 교육 등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보부상회의 이지은 디자이너는 “주변에 이마트 본사뿐만 아니라 지식산업센터가 있어 젊은 직장인들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대로변 3.3㎡당 4000만원
성수동 준공업지역엔 철강 자동차부품 이외에 섬유 피혁 인쇄업 등의 경공업 제조업체도 많다. 그동안 영세한 제조업체 밀집 지역으로 인식되면서 교통 여건이 괜찮은데도 부동산시장에선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이 같은 미(未)개발과 경공업 제조업이 디자이너 미술가 등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른 서울 상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차료가 싼 데다 작품 활동 과정에서 필요한 제품 등을 주변 제조업체를 통해 바로 조달할 수 있어서다.
최근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 건물을 매입하려는 수요도 늘어났다. 신동성 원빌딩부동산 팀장은 “지난해부터 한 달에 20여명 정도가 성수동 건물과 관련해 문의를 하고 있다”며 “대로변은 3.3㎡당 4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2~3년 전에 비해 1000만원가량 올랐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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