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공감 확대가 한일 화해 해법
2만여 명의 사망, 실종자를 낸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났다. 수십 만명의 주민들은 아직도 집을 떠나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당시 일주일간 현장취재를 하면서 본 처참한 피해현장과 주민들의 차분한 대응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자연의 거대한 힘을 다시 한번 깨달은 소중한 기회였다. 곳곳에서 만난 일본의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따뜻했다.
취재를 마치고 귀국한 3월19일 쓴 글을 다시 찾아봤다.
***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주먹밥(오니기리) ***
일주일 동안 일본의 지진 피해 현장을 취재하고 왔습니다. 일본인들의 건투를 빌며 글을 올립니다. 지난 17일 밤 10시30분. ‘동일본 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인 동북(도호쿠)지역 센다이 시에서 오전 7시 출발한 지 15시간30분 만에 도쿄역에 도착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이날 오후부터 니가타-도쿄간 신칸센 운행이 재개돼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도쿄역 앞에서 기다리던 일본인 지인 두 분과 함께 늦은 저녁을 했다. 몇년 전 도쿄 근무 당시 취재로 인연을 맺은 도요타자동차와 도쿄증권거래소 간부다. 대지진의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것을 축하(?)한다며 그들이 저녁을 샀다. 지진피해 등을 화제로 대화가 길어졌다.
교외에서 전차를 타고 도쿄 시내로 출근하는 두 사람은 전철 운행지연 사태로 출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2배 이상 걸리는 게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자동차에 근무하는 유카와 히데오 부장(IR담당)은 센다이에 사는 친척이 행방불명돼 생존을 확인할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일주일이 지났으나 인명 및 재산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2015년 현재 2만여명 사망 실종) 아직도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는 후쿠시마 원전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다. 원전사태가 악화되자 일본에서 자국민의 철수를 권고하는 나라들이 늘어날 정도로 향후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지진에다 방사능 물질 유출로 사태가 심각하지만 일본인들의 표정은 비교적 차분하다.
두 사람에게 후쿠시마원전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물었다. 정부가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기다려볼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천 명이 죽은 센다이 지역에서 벗어나는 도중 버스나 기차, 공항 대합실에서 만난 피난민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단전과 물류대란으로 연료,식품 등이 부족했지만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아픈 사람들을 먼저 배려했다. 버스나 항공편이 몇 시간씩 연착돼도 불평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센다이에서 저녁과 아침을 거르고 시외버스를 탔다. 두끼를 건너뛰니 배가 무척 고팠다. 시골역에서 버스에 오른 아주머니들은 가방속에서 직접 만든 주먹밥을 꺼내먹었다. 기자들이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자 웃는 얼굴로 주먹밥을 나눠주던 시골 아주머니의 따뜻한 얼굴이 떠오른다. ***
*** 2015년 3월의 일본 ***
대지진 4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보는 일본은 지진 현장에서 본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9일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동정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마르켈 총리는 도쿄시내 연설에서 “독일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며 “과거 정리가 화해를 위한 전제”라고 언급, 일본 지도자들이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독일 일간신문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도 메르켈 총리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일본의 국가주의적 ‘역사 세척’ 시도를 비판했다. FAZ는 9일 도쿄발 기사에서 “아베 총리가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씻어내려 하고 있다” 며 “아베총리 심복들이 미·일 동맹 뒤에 숨어서 일삼는 공격적 국가주의적 언행들이 일본경제의 회복을 막는 심각한 위험요소”라고 지적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도 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겨냥해 올해 패전일(8월15일) 무렵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에서 무라야마담화의 핵심 표현을 계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9일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냐고 중국과 한국이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국회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전체로서 계승한다”고 말하면서도 ‘식민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 핵심 표현을 이어받을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janus@han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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