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가정신인가] 美 델라웨어주, 하림에 '핫라인'…"규제있을 땐 언제든 연락하라"

입력 2015-03-13 18:39  

<3부> 기업 족쇄부터 풀어라 (4·끝) '규제의 덫' 없는 곳으로 달려가는 기업들

말레이시아 "원하는 것은 뭐든…"
강성노조 없고 법인세 혜택
태국·베트남 등 끈질긴 유혹



2013년 11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 연방 주정부는 한국 게임 업체들에 공개 제안서를 보냈다. 내용은 이렇다. “한국 게임 업체들이 NRW로 옮겨오면 프로젝트당 최대 10만유로(약 1억4000만원)를 지원하겠다.” 당시는 정치권에서 ‘게임중독법’ 입법을 추진하던 때다. 이 법은 게임산업을 마약, 술, 도박과 묶어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정부가 적극 관리하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이 법안에 강력 반발하던 게임 업체들로선 NRW 제안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70여개의 한국 게임 업체들이 투자 상담에 응했다. NRW 경제개발공사 한국사무소 관계자는 “NRW 주정부는 게임 클러스터를 새로 육성하기 위해 해외 기업, 그중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을 우선 유치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의 관심이 뜨겁다”고 전했다.


해외 지자체 “한국 기업 어서오라”

한국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해외 정부는 ‘칙사대접’을 해준다. 말레이시아 테렝가누주(州)는 3년 전 CJ제일제당의 사료용 아미노산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끈질긴 구애작전을 폈다. CJ제일제당의 새 공장 투자액은 4억달러. 테렝가누주는 1년여에 걸쳐 CJ제일제당에 “무조건 다른 나라보다 나은 조건을 제공할테니 우리에게 투자하라”고 제안했다. ‘백지수표’와 다름없는 조건을 제시한 것. 결국 CJ제일제당은 말레이시아에 4억달러짜리 공장을 세워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동했다.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은 2011년 미국 델라웨어주의 식품가공회사를 인수한 이후부터 주정부로부터 ‘귀빈’ 대접을 받는다. 잭 마켈 주지사는 이듬해부터 김홍국 하림 회장을 주정부 영빈관으로 초대하는가 하면 하림 익산공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하림과의 ‘핫라인’도 설치했다. 기업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의미에서다. 문경민 하림 상무는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델라웨어 주정부가) 정말 필사적으로 뛴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귀띔했다.

기아자동차 등 국내 기업이 많이 투자한 미국 조지아주도 ‘지극정성’이다. 조지아주는 2013년 4월 말 전문직 취업비자(E-4) 중 연간 1만5000개를 한국 기술인력에 할당해줄 것을 연방의회에 공식 요청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한국 출신 기술인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취지에서다.

한국 기업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인 강성노조가 없다는 이점을 들어 투자 유치에 나선 곳도 있다. 울산, 창원 등 지방도시의 자동차부품 업체 유치에 나선 태국투자청이 그런 사례다. 남경민 태국투자청 서울사무소 투자관은 “태국이 관광지만 있는 게 아니라 세계 9위의 자동차 수출국으로 차(車) 생산의 최적지라는 점과 함께 노동력 관리가 쉽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한다”고 설명했다.

떠나는 한국 기업, 오지 않는 해외 기업

‘족쇄’가 없는 곳으로 기업이 가는 대표적 사례로는 ‘삼성전자의 베트남 투자’를 들 수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두 곳의 휴대폰 공장(박닌성, 타이응웬성)을 둔 데 이어 추가 공장건설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두는 가장 큰 이유로 ‘싼 인건비’를 꼽을 수 있다. 베트남의 1인당 월 급여는 350달러가량으로 한국(구미사업장)의 10분의 1도 안된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베트남은 삼성전자를 위해 파격적인 지원을 해준다.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법인세를 4년간 면제해주고 이후 5년간은 5%, 그 이후 34년간은 10%의 세율만 매기는 혜택을 줬다. 수입관세와 부가가치세도 ‘0%’다.

호찌민에 설립 예정인 삼성전자 가전공장에 대해선 더 파격적인 혜택을 줄 예정이다. 6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고, 이후 4년간 5%의 세율만 적용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 임차료도 공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인건비, 땅값 등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라는 ‘족쇄’를 더 채우면 기업들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이런 우려는 가시화되고 있다. 해외 기업의 한국 투자액은 2012년 106억9300만달러에서 2013년엔 97억900만달러로 9%가량 줄었다. 이 가운데 그린필드 투자액(공장, 사업장을 짓는 투자 형태)은 2012년 72억2200만달러에서 작년 56억6200만달러로 21.6% 감소했다.

반면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지분, 시설투자 포함) 규모는 2012년 251억6300만달러에서 2013년 306억5100만달러로 21.8% 증가했다. ‘새로 들어오려는 기업’은 줄어들고 ‘있던 기업’마저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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