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수사의 기초는 경제야!"…동작서의 '경제교육팀 실험'

입력 2015-03-14 09:09  

사기·횡령·보이스피싱 급증에 전국 경찰서 중 첫 신설
20년 경제 수사 베테랑 영입…신임 수사관에게 경제범죄 교육
인력 늘리고 체계적 운영…"전문성 강화 도움" 만족 높아



[ 오형주 기자 ]
“A가 빌려준 차량의 반환을 B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고 있어 횡령죄가 성립됩니다.”(서민경 경장)

“단순히 반환을 거부한다고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보기엔 사건이 복잡하다. A와 B는 공동으로 법인을 설립한 동업자였는데 지분율이나 투자금 처리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장관승 팀장)

13일 오전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경제교육팀의 발표수업. 한 횡령 사건에 대한 발표를 들은 장 팀장(46·경감)이 계속 질문을 던지자 팀원들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 팀장은 “반환 거부라는 행위에 집중하기 전 차량 대여 이면에 있는 재산의 이전관계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동작서가 지난달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제교육팀을 신설, 신임 수사관들에게 경제범죄 수사 이론과 실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경제사건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부족해 경찰 조직 내 대표적인 기퓟關??꼽히는 경제팀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다.

신임 수사관에게 3개월 이론·실무교육

동작서 경제교육팀은 교육을 맡은 장 팀장과 팀원 5명으로 구성돼 있다. 팀원 중 4명이 이번에 수사 업무를 처음 맡은 신임 수사관들이다. 이들은 2~3개월간 교육팀에서 경제 수사 이론과 실무를 집중적으로 익힌 뒤 경제팀, 사이버수사팀 등 현장 부서에 배치된다.

이날 찾은 경제교육팀 사무실은 일반적인 경제팀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팀원들의 책상 앞에는 조사를 받으러 온 민원인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장 팀장은 “1주일에 이틀간 집중적으로 강의와 발표 수업을 진행하고 나머지 기간엔 일상적인 경제팀 업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대신 업무는 비교적 단순한 고소·고발이나 소액사기사건 등으로 한정했다.

경제교육팀 활동의 핵심은 팀원들의 발표수업이다. 매주 화·금요일에 열리는 발표 준비를 위해 팀원들은 실제 경찰에서 처리한 사건을 놓고 관련 이론과 판례를 찾아 분석한다. 발표 뒤엔 팀장의 평가를 듣고 다른 팀원들과 의문점이나 부족한 점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강예리 순경(28)은 “팀원들이 직접 교육 자료를 만들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주입식 강의보다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경제범죄 수사의 기초를 제대로 배우게 됐다는 반응이다. 최재훈 경위(35)는 “교육팀이 없던 1월 처음 경제팀에 배치됐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을 받고 곁눈질로 배우느라 무척 힘들었는데 이제는 경제사건에 눈을 좀 뜨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 인력 줄어 기피부서 된 경제팀

경제교육팀 신설 아이디어는 윤외출 동작경찰서장이 냈다. 윤 서장은 “최근 고소·고발 등 경제 사건이 폭증하는데 과거보다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며 “지난해부터 경제팀을 활성화할 방안을 고민한 결과 교육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경찰서 경제팀에 접수된 고소·고발사건 수는 2010년 44만2706건에서 2013년 50만4672건으로 늘어나는 등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금융기법이 등장하고 인터넷·스마트폰 이용 범죄 등 사건 양상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꿈에서도 사건기록이 떠다닐 정도로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한 경찰서 경제팀 수사관)고 하소연할 정도다. 민원인들이 변호사를 대동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예전처럼 공권력의 권위만을 내세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연히 경찰 내부에서 경제팀은 일은 많은데 성과는 내기 어려운 기피부서가 돼 버렸고 중견 수사관들은 경제팀을 떠났다.

빈자리는 경력이 짧은 1~2년차 직원들이 채웠다. 그러나 체계적인 교육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돼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6개월~1년 뒤 다른 부서로 옮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성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사건 처리가 지연되거나 참고인 중지 의견이 남발되면서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엔 동작서에서 격무에 시달리던 한 30대 초반 경제팀 수사관이 장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발생했다. 윤 서장은 “젊은 직원이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인력 보강을 빨리 추진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교육팀을 운영하려면 우선 팀장을 적임자로 선발해야 했다. 윤 서장은 일선 경찰서 경제팀과 서울청 사이버수사대 등에서 20여년간 경제범죄를 다뤄온 장 팀장을 올해 1월 동작서로 데리고 왔다.

경제팀 인력도 보강했다. 다른 과의 정원을 조금씩 줄여 경제팀 규모를 기존 3개팀(23명)에서 6개팀(34명)으로 늘렸다. 경제교육팀과 특별(경제)수사팀도 신설했다. 특별수사팀은 경제 관련 장기미제사건을 전담한다. 윤 서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제팀에 가면 고생만 한다’며 다들 기피하는 분위기였지만,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인력을 보강한 뒤엔 경제팀을 희망하는 직원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경찰서 경제팀 교육체계 강화해야

경제팀 강화는 경찰 조직 전체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경찰청이 올해 초 “일선 경제팀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2017년까지 경제팀 수사관을 15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배경이다. 경찰청은 특히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변호사들을 경감으로 특별채용해 이 가운데 매년 20명을 경제팀에 배치하기로 했다. 또 경찰대와 간부후보 출신 경위는 2년간 경제팀에서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인력 확충과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일선 경찰서에서 교육과 경험의 전수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대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영국 경찰서에선 신임 수사관이 오면 6개월가량 고참으로부터 교육을 받는다”며 “동작서가 자체적으로 교육팀을 꾸린 건 이런 맥락에서 긍정적인 만큼 다른 경찰서와도 수사 사례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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