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의원은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습니다. 당시 정개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주성영 의원과는 ‘백주대낮' 몸싸움을 벌여 언론에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양측 실랑이가 거칠어지면서 보좌진간 격투가 벌어졌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사건이 있던 다음 날 여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어제 주 의원에게 왜 농어촌인 우리 선거구만 없애려고 하는지 물어 봤는데 (주 의원이) 이유는 말해주지 않고 도망만 다녀 끝까지 쫓아다녔다"며 "실제로 폐구되어야 할 곳은 남해하동이 아니라 선거구 하한선에 미달되는 부산 남구나 대구 달서구인데, 이들이 대도시이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미달되지도 않은 농어촌을 몰아내려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또 "단일선거구인 농어촌 지역구가 폐구되면 앞으로 농어촌 군단위에서 다시는 국회의원을 뽑을 기회가 없게 된다"며 "약자인 농어촌을 보호 構?국토균형발전에 힘써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구 의원들의 선거구 통폐합에 대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선거구 획정이 계속 지연되었고,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총선에 한해 의석을 299석에서 300석으로 하자”는 대안을 내놔 정치권은 여러 통폐합 선거구를 살려냈습니다.
국회의원 스스로 지역구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앞서 2004년 17대 총선 때도 선거구 획정 논란을 거듭하다 의원정수만 273명에서 299명으로 늘였고, 2008년 18대 총선 때는 비례대표 의석을 2석 줄이면서 지역구를 2석 늘리는 ‘꼼수’를 보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 의원의 지역구인 남해·하동을 경남 사천과 통합하는 선거구 획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여 의원은 그 자리에서 '남해·하동 군민에 고함'이라는 글을 통해 "국회는 온몸을 던져 가로막는 동료 의원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법과 원칙을 저버린 채 농어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며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라 받아들이고 군민 여러분께 무릎 꿇어 사죄드린다"고 했었지요.
지역구 몇석을 합치고 쪼개는 일은 이처럼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킵니다. 올초 헌법재판소는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 1이하로 바꿔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인구감소 추세등으로 수도권 선거구 인구의 절반 이하인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선거구를 합치거나 쪼개야 하는 곳이 무려 62개 선거구에 달합니다. 예전 몇개 선거구 조정하는 문제로 정치권은 홍역을 치렀습니다. 무려 60여개가 넘는 선거구를 손질해야 하는 이번 정개특위에 정치권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과 선거제도 개편의 칼자루를 쥔 정개특위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지난 17일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위원장과 함께 19명 위원 구성을 확정지었습니다. 정개특위는 선거구 획정안 등을 합의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로 넘기게 되고, 이 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합의한 대로 공직선거법 개정이 이뤄집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선거구에 대한 위헌 판결로 그 어느 때보다 심한 갈등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개특위 위원 중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의 행보가 눈에 띕니다. 자신의 선거구가 통합문제로 ‘백주 활극’을 불사했던 여 의원이 이젠 칼자루를 쥔 정개특위 위원이 됐기 때문입니다.
18일 열린 첫 정개특위 회의에서 여 의원은 “선거구 획정안에 위헌이 있는지만 심의해서 본회의에 부의하는 역할만 해야 된다”며 “(19대 총선 선거구 획정때) 여야 야합에 의해 선거구를 통폐합시키는 위헌 위법 현장을 목격했다.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 되선 안된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과거 자신의 지역구 통폐합을 경험하며 정개특위를 비난했던 여 의원이 통폐합이 유력시 되는 농어촌 지역구 및 궁지에 내몰린 동료 의원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pmgj@hankyung.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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