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 핀 한진重…장기 휴직자 전원 복귀·도크엔 작업물량 가득

입력 2015-03-18 21:26  

2008년 글로벌 불황 이후 해고·분규·농성 등 줄이어
5년간 수주 한 건도 못해

"회사 살아야 모두 살 수 있다"…노조가 직접 수주 지원 나서
일감 몰리며 모처럼 활기



[ 김보라 기자 ]
‘일감 수주에 노사가 따로 없습니다. 한마음으로 수주에 만전을 기해나가야 합니다. 도크에 물량이 가득해야 고용불안도 휴업도 사라집니다.’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조선소에는 이달 들어 이 같은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구조조정 여파로 2년간 현장을 떠났던 장기 휴직자 300명이 전원 일터로 복귀한 직후 노조위원장이 조합원들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

김외욱 노조위원장은 “2010년 휴업 한파가 몰아친 지 4년여 만에 휴업자 전원 복귀가 이뤄져 기쁘다”면서도 “한편으로 조선업 불황이 계속되고 있어 불안함을 감출 길이 없다”고 했다. 또 “노사가 힘을 합해 일감을 따내지 않으면 또다시 모두가 고통의 터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나만이 아니고 우리를, 우리를 넘어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행동하자”고 강조했다.

한국 1호 조선소인 한진중공업은 한때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2008년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일감이 줄면서 생산직 정리해고를 했던 게 발단이 됐다. 노사 분규는 해마다 이어졌고 309일간 타워크레인 농성, 시신 농성, 대규모 거리 시위까지 벌어졌다. 조선소는 폐쇄 직전까지 갔다. 당시 선박 수주가 급감한 이유에 대해 노조는 “사측이 영도조선소를 일방적으로 폐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주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사 갈등이 깊어지면서 수주도 뚝 끊겼다. 선주들 사이에 약속한 납기일에 배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된 탓이다.

노사 간 극심한 대치는 ‘5년간 수주 실적 제로’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2011년 12월부터 총 750명의 직원 중 절반 수준인 300여명이 번갈아가며 휴무에 들어갔다. 언제 복귀될지 모른 채 직원들은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한 직원은 “전국을 떠돌며 일용직으로 안 해본 일이 없고, 그 절망감은 현장을 떠나본 사람만 안다”며 “아내와 아이들까지 고통을 짊어져야 했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돼 직장을 잃을 뻔했던 직원들은 이제 ‘회사가 살아야 모두가 살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게 됐다.

한진중공업 노조는 불황 탈출을 위해 사측과 손잡고 함께 뛰었다. 2012년 당시 노조위원장은 선박 발주사를 상대로 ‘납기 준수와 품질보장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여러 차례 제출했다. 절박함은 통했다. 2013년 7월, 5년 만에 첫 수주 물꼬가 터지면서 2013년 6억9000만달러, 지난해 7억7000만달러 수주를 달성했다. 노조위원장이 수주 현장에서 발주사를 설득하는 역할은 현 노조위원장도 이어가고 있다.

노사가 안도하면서 지역사회도 밝아지고 있다. 조선소 주변 상권이 살아났고, 하도급업체들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분규 때 도로 점거 등으로 피해를 입었던 영도구 주민들을 위해 노사는 김장 담그기 행사, 복지원 방문 등을 정례화했다. 노조 관계자는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한진중공업 노사는 수주 확대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똘똘 뭉쳐 나아가고 있다”며 “고용불안을 없애는 건 어느 한쪽의 노력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희생과 목표의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수주가 살아나면서 증권업계에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사업장과 영도사업장 모두에서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며 “올해 국내 조선업체 중 유일하게 매출과 수주가 전년보다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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