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실크로드의 끝에 신라가 있다
(11) 뉴욕으로 날아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12) 원효와 의상, 서로 다른 길을 가다살반가사유상
(13) 발해는 결코 중국사가 될 수 없다
(14) 지금 내 옆에는 누가 있나?
660년, 그리고 668년 각각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 나당연합을 조직해 통일의 주도권을 가져갔다고 자칫 생각하기 쉬우나 이미 100여년 전에 신라는 통일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라 제24대 왕이던 진흥왕의 남다른 전략과 실행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무려 36년간 신라를 진두지휘한 진흥왕은 고구려와 백제 모두를 물리치며 삼국 간의 항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합니다.
나제동맹의 활용과 파기
551년 고구려로부터 남한강 유역을 뺏은 후 세운 단양적성비부터 시작해 555년 북한산 순수비, 561년 세운 창녕 순수비, 568년 황초령·마운령 순수비 등을 통해 우리는 진흥왕이 남과 북, 그리고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박혁거세 이후 동쪽에 치우쳐 있던 신라가 건국 이후 최대의 영토 확보에 성공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시작은 의외로 백제였습니다. 당시 백제 제26대 왕인 성왕은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친 뒤 고구려로부터 잃어버린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신라와 연합, 즉 나제동맹을 강화합니다. 진흥왕은 이 나제동맹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전략을 준비합니다.
551년 나제동맹 군은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있는 충북, 강원 영서, 경기 일대를 차지합니다. 5세기 장수왕의 남하로 빼앗긴 한강 유역 일부를 백제는 신라의 도움으로 차츰 회복해 나간 것이지요. 그런데 553년 진흥왕은 120년 동안 지속되었던 나제동맹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백제군을 기습합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은 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개는 삶아 먹는다는 고사처럼 진흥왕은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역이용한 것이지요. 이제 한강의 주인은 신라로 바뀌게 됩니다. 진흥왕은 황해를 건너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북쪽의 고구려와 서남쪽의 백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지요.
관산성 전투, 백제 성왕의 전사
이런 상황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발한 나라는 백제입니다. 이제 백제에 신라는 배신의 아이콘이자 무너뜨려야 할 원수가 된 것이지요. 554년 백제 성왕은 우호 관계에 있던 왜와 가야까지 총동원하여 신라 땅으로 통하는 관문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관산성(충북 옥천)을 총공격해 차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성왕은 매우 기뻐하며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단지 50명의 병사들만 거느리고 관산성에 가던 중 신라 복병에게 의외의 기습을 받게 됩니다. 성왕은 결국 살해당하였으며 신라는 파죽지세로 관산성을 공격해 3만여 백제군을 몰살시켜 버립니다.
이제 한강 유역은 확실하게 신라가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증거가 바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북한산 순수비입니다. 555년 진흥왕은 직접 북한산을 순행하며 자신이 차지한 영역을 확인한 것이지요. 진흥왕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남쪽으로 군사를 보내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연맹을 정복하며 낙동강 유역을 장악합니다.
북쪽으로는 고구려를 공격해 함경도 지역을 차지하였지요. 이 정복지들에도 마찬가지로 진흥왕은 순수비를 세웁니다.
화랑도와 황룡사를 만든 진흥왕
진흥왕은 단순히 싸움만 잘한 것은 아닙니다. 국력을 모으고 전쟁을 쉴 새 없이 치른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라인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남다른 방안도 필요했지요.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화랑도를 만들고 황룡사를 창건했습니다. 화랑도 이전에 ‘원화’라고 하여 청소년 집단이 있었지만 이를 개편해 심신 수련에서부터 군사 역할까지 담당하도록 만들었지요. 귀족 자제 중에서 선발된 화랑이 우두머리가 돼 일반 평민의 자제까지 참여하는 화랑도를 통해 국가 발전의 인재를 꾸준히 찾을 수 있었지요. 이 시기 대표적 화랑으로 가야 멸망에 앞장 선 사다함이 있습니다. 한편 진흥왕은 신라 최대 사찰인 황룡사를 창건합니다. 신라가 성스러운 짐승인 황룡이 지켜주는 불국토임을 내세우며 사회 분위기를 하나로 모아 국력을 신장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통해 진흥왕은 북쪽으로는 동해안을 따라 함흥 평야 일대까지, 서쪽으로는 한강 유역을 통해 황해까지, 그리고 남쪽으로는 낙동강 유역까지 뻗어 나가며 삼국 각축전의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6세기 진흥왕의 놀라운 영토 확장 과정을 통해 이제 신라는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0여년 뒤 그 길은 완성되지요. 누구에게나 기회가 오지만 아무나 그 기회를 잡는 것은 아닙니다.
미리 준비한 자에게, 그리고 남다른 생각과 전략이 있는 자에게 기회는 한줄기 빛이 되는 것이지요. 이제는 북한산 정상이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제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보며 6세기 우리 역사를 다시금 곱씹어 봅니다.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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