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보다 음대·미대 더 많이 진학…대원여고의 기적

입력 2015-03-23 20:34   수정 2015-03-24 04:11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는 것
음악·미술 등 예술에 재능 있지만 가정형편상 할 수 없었던 학생들 발굴
관악반 80%이상 서울시내 대학 입학…예술고 진학률보다 20%포인트 높아

불가능한 일을 성공시키는 힘
학교측, 수억 들여 악기 사고 합주실 마련
레슨은 이 학교 출신 연주자가 재능기부
평소 공부에 흥미없던 학생들도 밤 늦게까지 악기·미술연습 '열정적'



[ 임기훈 기자 ]
지난 19일 오전 7시 서울 중곡동 대원여고 관악(管樂)반 연습실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창문으로 연습실 안을 들여다보니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곧 호른, 트롬본, 튜바 등 우렁찬 관악기 소리가 하모니를 이뤘다. 한 학생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한 시간 이상씩 악기 연습을 한다”며 “등교시간은 오전 7시까지인데 6시30분이면 관악반의 거의 모든 학생이 학교에 나온다”고 말했다.

대원여고는 음악과 미술에 재능과 관심이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기회가 없어 악기를 접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을 발굴, 지도해 대학 진학까지 시켜주는 ‘꿈을 키워주는 학교’로 유명하다. 현재 관악반, 미술반, 셈갯?등 예체능반을 운영하고 있다. 관악반은 한 학년에 한 반 35명씩 총 세 개 반이 있고 미술반은 2학년과 3학년에 한 개 반씩 운영 중이다. 체육반은 작년부터 한 개 반이 구성됐다. 고교 입학 전까지 악기 이름조차 모르고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악기 초보자’를 음대 전공자로 길러내는 대원여고는 최근 예술고보다 더 높은 서울 시내 대학 진학률로 주목받고 있다. 관악반은 2004학년도부터 2015학년도까지 12년간 총 관악반 졸업생 420명 중 90%가 넘는 383명을 음대에 진학시켰다. 관악반 졸업생의 약 64%인 267명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를 비롯한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 합격했다. 같은 기간 한국예술종합학교나 오스트리아·독일 음악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도 21명에 달한다. 학교 관계자는 “작년과 올해에는 80%가 넘는 학생이 서울 시내 대학에 갔다”며 “이는 예술고 평균 진학률보다 약 20%포인트 이상 높은 비율”이라고 강조했다. 미술반도 평균적으로 매년 50% 이상의 학생을 서울 시내에 있는 4년제 미술대학에 보내고 있다.

아무 경험도 없는 학생들이 중학교부터 대입을 준비하는 예술고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대원여고의 아낌없는 지원이다. 1997년 특별활동 부서로 운영되던 관악부가 외부 경연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자 학교는 아이들의 재능이 아깝다며 이를 키워주기 위해 수억원을 들여 악기를 사고 교내에 콘서트홀, 합주실 및 개인연습실까지 마련했다. 교사들은 공부에는 折隔?없어도 그림이나 음악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을 눈여겨봤다가 예체능반에 들어오라고 권유한다. 올해로 18년째 관악반을 책임지고 있는 관악예술과장 이창원 교사는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돕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는 개인 레슨에 필요한 비용도 거의 받지 않는다. 지도를 위해 초빙하는 강사는 후배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 학교 출신 전문연주자나 대학강사들이다. 한 관악반 학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악기를 사는 것은 물론 레슨비도 엄두도 못 냈는데 연간 수천만원을 쓰는 음대 지망생들과는 달리 우리 학교에서는 입시 준비를 하는 데 한 달에 5만원이 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9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미술반도 별도로 마련된 미술연습실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미술학원에 가는 등의 특별한 사교육이 필요없다.

지도교사들은 학생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학생들의 ‘열정’을 꼽는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던 학생들이 관악반이나 미술반에 들어가면 오후 10시까지 악기, 그림 연습을 하는 것은 물론 주말과 방학 때도 매일같이 나온다.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지도교사들도 휴일과 방학에 출근할 정도다. 권현숙 교장은 “아이들이 열심히 하는 것은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라며 “수업시간에 태도가 불량하다고 지적받던 학생들도 목표가 생기니 진지해지고 성실해졌다”고 말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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