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지수 2만 고지 '눈앞'…일본증시에 무슨 일이?

입력 2015-03-24 14:56  

[ 권민경 기자 ]

올 들어 일본 주식 시장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일본 중앙은행(BOJ)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엔화 약세가 지속되자 기업 이익이 늘어나고 이것이 증시 상승으로 연결되는 모습이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엔화 약세와 더불어 일본 기업의 '구조조정' 효과도 본격화되고 있다며 실적 개선과 증시 강세가 추세적 상승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경제의 의미있는 변화는 이제 시작이라는 게 증권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 닛케이지수 12% 상승…글로벌 증시 주도

24일 금융투자업계와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올 들어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2% 넘게 올라 글로벌 증시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닛케이지수는 전날에도 1% 이상 상승한 1만9754.36을 기록해 2만선 고지를 눈앞에 뒀다. 이는 2000년 4월 14일 이후 15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늦춰질 것이란 전망과 일본 기업들의 임금 인상으로 인한 내수 확대 기대가 맞물린 덕분이다.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 이후 이어지고 있는 엔화 약세도 증시를 끌어올리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닛케이지수의 업조별 시가총액 비중을 살펴보면 자동차 15.9%, 은행 11.7%, 정보기술(IT) 10.0%, 헬스케어 6.6%, 기계 6.2% 등이다.

엔화 약세의 직접적인 수혜주(株)라 할 수 있는 자동차, IT, 기계 업종의 비중이 32.1%로 높기 때문에 엔화 약세는 닛케이지수에 올라있는 기업들의 이익 증가로 연결된다.

송흥익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 국면에서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이익 증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일본 증시가 상승하고 있다"며 "일본 양적완화가 시작된 2013년부터 닛케이지수 구성 종목들의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닛케이지수 종목들의 매출은 2007년 391조엔을 고점으로 2012년까지 5년간 정체 상태였다가 2013년 426조엔으로 급증한 뒤 꾸준히 늘고 있다.

2007년 엔·달러 평균 환율 117.5엔에서 기록한 매출을 2013년 98.0엔에서 돌파한 이후 작년 엔화가 106.6엔으로 상승한 데 따라 기업 매출도 동반 상승했다.

송 연구원은 "올 들어 엔·달러 평균 환율이 119.4엔 수준이기 때문에 닛케이지수 종목의 매출 증가는 지속될 것"이라며 "영업이익률도 2012년 6.9%에서 올해 8.6%로 상승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결국 엔화 약세는 일본 기업들의 매출 증가와 영업이익률 상승의 핵심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송 연구원은 "일본 증시 상승은 철저히 엔화 약세를 기반으로 한 기업 이익 증가에 따른 것"이라며 "따라서 향후에도 이익이 증가하는 것만큼 주가가 상승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 일본 기업 '구조조정' 주목…경쟁사간 제휴도

일본 기업의 缺?상승이 비단 엔화 약세에 따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환율이 긍정적 영향을 준 건 분명하지만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일본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보다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기업들은 지난 몇년 간 조용히 사업부를 개편하고, 새로운 기술에 투자했다"며 "위기감에서 출발한 일본 기업들의 강력한 구조조정이 환율 효과와 맞물려 의미있는 부활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쓰비시중공업을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이 회사는 기존 9개 사업부를 4개로 줄여 조직을 간소화했고, 각 사업부를 다시 네가지 범주로 분류해 예산 배정, 자본 비용을 차별적으로 적용했다.

평생 고용을 보장하고 호봉제가 일반적인 일본 기업 사례에 비춰볼 때 미쓰비시중공업의 이런 변화는 이례적이라는 게 박 연구원의 진단.

그는 "이례적 변화가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해하던 중 회사 측에서 흥미로운 답변을 들었다"며 "회사 관계자로부터 '변하지 않으면 망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박 연구원은 "많은 기업들이 내부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경쟁기업 간 제휴와 사업부 재조정도 활발히 하고 있다"며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했던 자동차, 기계, 중공업 등의 영역에서 일본 기업들이 외형을 확대하게 되면 국내 기업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내다봤다.

구조조정을 통한 일본 기업들의 이익 개선이 시작 단계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보다 일본 기업을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내 전자업계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일본 전자 기업들이 TV와 PC 같은 전통 IT 분야에서 탈피하고 있다"며 "이들은 전통 IT 제품보다는 에너지, 콘텐츠, 솔루션, 반도체 등 새로운 먹거리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소니와 도시바 등은 TV 사업을 분사하거나 대폭 정리했고, 샤프 역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TV 사업 축소를 5월께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대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제휴해 원자력 발전시설 건설에 경쟁력을 확보했고 프랑스, 우크라이나, 독일 등에 원자로 시설을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미래 사업으로 역량을 집중했던 의료 장비 부분에서도 세계 4대 제조업체(지멘스, GE, 필립스, 도시바)로서 특히 CT 부문에서는 지멘스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일찌감치 TV 사업을 정리한 파나소닉은 자동차와 에너지 부문에 집중하면서 도시바처럼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파나소닉은 미국 테슬라 자동차의 2차 전지 공급업체로서 '기가 팩토리' 투자에 동참하는 등 테슬라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노 센터장은 "일본 기업들의 변신은 전통 IT 제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 전자 기업들의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도시바, 파나소닉, 소니의 현재와 미래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소비자 가전보다 진입 장벽이 더욱 높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도 "일본 기업 주식은 향후 유망한 투자대상이 될 것"이라며 "국내 관련 기업들은 '일본의 공습'에 대비해 강력한 구조조정과 함께 미래 성장을 위한 효율적인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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