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 국민 2명을 국가정보원 간첩이라며 억류하고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을 '테러 분자'로 규정한 것은 남북관계에 만만치 않은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대남 적개심이 고조돼 남북관계 개선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으며 북한에 억류된 국민이 3명으로 늘어난 데 따른 정부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북한은 '괴뢰정보원 간첩'이라며 억류한 김국기(61) 씨와 최춘길(56) 씨의 26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들이 미국과 국정원 지령에 따라 "가장 비열하고 음모적인 암살 수법으로 감히 우리의 최고수뇌부를 어찌해보려고 날뛴 극악한 테러 분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최고지도자 암살과 같이 북한 체제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테러를 모의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김 씨는 중국 단둥(丹東)을 근거지로 2009∼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가능성과 관련해 예상 이동 경로과 열차 시간 등의 정보를 수집해 국정원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최 씨도 국정원으로부터 "(북한) 최고지도부의 움직임과 관련한 정보 수집에 총력을 집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실토했다.
그는 남한 공수부대와 특공부대가 북한에 침투할 때 사용할 북한 볶뮌?구해 국정원에 넘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자백을 공개한 것은 남한 정부가 흡수통일을 위해 북한 체제 붕괴를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북한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씨가 2010년 국정원 지령을 받아 북한 경제와 민심 혼란을 가져오고자 위조화폐를 찍어 유포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남한을 최고지도자 암살까지 추구하는 실질적인 적대세력으로 묘사함으로써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억류 중인 남한 국민이 3명으로 늘어난 것은 정부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0월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가 아직도 풀려나지 않은 상황에서 억류자 2명이 추가돼 정부가 이들의 무사 귀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최고지도자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받지도 않은 김 선교사가 작년 5월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음을 고려하면 김국기 씨와 최춘길 씨는 더 무거운 형에 처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여러 차례 북측에 김 선교사의 석방을 촉구했지만, 북한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작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전격적으로 북한에 보내 억류 미국인 2명을 송환한 것처럼 정부가 적극적인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 북한이 김 씨와 최 씨를 붙잡아 공개 기자회견까지 연 것도 이 같은 효과를 노린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이번 기자회견에 ?김국기 씨와 최춘길 씨의 활동에 협력한 중국인들에게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국가안전보위부 간부가 기자회견 직전 "몇 푼의 돈 때문에 간첩질을 하는 외국 국적자들에게도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이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국정원의 정보수집 활동에 협력하는 중국인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김 씨가 노동신문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단둥 지역에서 '국정원 거점'으로 쓰이는 상점, 식당, 무역회사, 병원, 호텔 등 약 30곳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점도 눈에 띈다.
단둥을 비롯한 북중 접경지역이 국정원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고 있음을 부각한 것이다. 북한이 중국 정부에 대해 북중 접경지역에서 남한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수집 활동을 제한할 것을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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