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명예회장은 1950년대 산업 태동기 이승만 정부에서 경제관료로서 경제정책과 행정제도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7년 부흥부(전 경제기획원) 장관과 1959년 재무부 장관 등 주요 경제부처 수장을 지내면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1957년 부흥부 장관에 오른 뒤에는 농업이 아닌 공업에 투자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 관철시켰다. 충주 비료공장과 수력발전소 건설 등이 그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1959년에는 재무부 장관 자리에 올라 건국 이래 처음으로 흑자재정을 달성했다.
송 명예회장은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제안도 많이 내놨다. 한국은행에서 공채를 시도해 성공한 경험을 살려 재무부 장관 시절 국내 최초로 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공개 채용했다. 기업을 세우고 경영할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연세대와 고려대에 경영학과를 신설하도록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조선총독부 건물(옛 중앙청)을 정부청사로 쓸 수 없다고 하자 돈도,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원조 당국에 쌍둥이 청사를 지어 하나씩 사용하자고 제안해 문제를 해결한 일화도 유명하다.
박정희 정부 때는 EC(유럽공동체) 대사와 초대 수출입은행장을 지냈다. 2년 반의 EC 대사 재임 기간에 유럽 수출을 3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끌어올려 달라는 박 대통령의 특명을 완수해 ‘기적을 만든 대사’로 불리기도 했다. 전문 인력은 물론 경험과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 무역의 첨병이 될 수출입은행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것도 공적으로 꼽힌다.
준수한 외모와 탁월한 외국어, 풍부한 식견을 갖춘 송 명예회장은 ‘재계의 신사’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 동양나이론 회장을 맡아 기업계에 몸담은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한국경제연구원장, 한국능률협회 회장, 한미협회 회장 등을 거쳤다. 20여년간 한국능률협회를 이끌며 기업가 정신 함양과 산업인재 육성에도 힘썼다. 최근까지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과 효성그룹 고문을 지냈다.
그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고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7년 최고 영예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한·미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수교훈장 광화장(1991년)과 한미협회 한미우호상(2004년), 국제로타리 최고영예상(2007년) 등도 받았다. 저서로는 1959년 펴낸 ‘외화와 생활’, 1994년 펴낸 회고록 ‘부흥과 성장’ 등이 있다.
박영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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